문화·스포츠 문화

정재일 "소리로 담아낸 '물의 미장센' 느껴보세요"

'기생충', '오징어 게임' 음악으로 호평 이어

국립창극단 '리어' 작곡…두 번째 창극 도전

원작에 '물의 철학' 노자 사상 녹여낸 텍스트

"음악에 담긴 물의 이미지로 극장 꽉 채울것"

국립창극단의 신작 ‘리어’에서 작곡을 맡은 정재일/국립극장 제공국립창극단의 신작 ‘리어’에서 작곡을 맡은 정재일/국립극장 제공




영화 ‘기생충’과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의 음악을 맡아 세계인의 귀를 사로잡은 정재일(사진)이 이번엔 창극으로 관객을 찾아온다. 국립창극단의 신작 ‘리어’(17~27일 국립극장 달오름)를 통해서다. 삶의 비극과 인간에 대한 셰익스피어의 원작을 물(水)의 철학으로 일컬어지는 노자의 사상과 우리 소리로 엮어낸 이번 작품은 안무가 정영두가 연출을 맡고 배삼식이 극본을, 한승석이 작창을 맡았고, 정재일은 작곡으로 참여한다. 지난 2016년 ‘트로이의 여인들’에 이은 두 번째 창극이다.



정재일은 지난 11일 진행된 화상 인터뷰에서 “(극의 중심을 이루는) 물의 이미지를 상상하면서 전자 음향으로 공간 전체를 감싸는 것에 집중했다”며 “여러 소리가 쌓인 퇴적층 같은 소리를 만들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그의 말처럼 이번 작품의 핵심 키워드는 ‘물’이다. 막이 오르면, 리어가 세상의 이치를 모두 깨달은 듯 도덕경을 외며 ‘모든 것을 내려놓고 물과 같이 낮은 곳으로 흘러가겠노라’ 말한다. 그러나 이내 끝없는 욕심으로 파멸의 길을 걷고, 그렇게 시간이란 물살에 휩쓸려가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인간의 어리석음이 그려진다. 주제를 더욱 극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폭 14m, 깊이 9.6m 크기의 달하는 무대 세트에 총 20톤의 물이 채워지고, 수면의 높낮이와 흐름의 변화를 통해 작품의 심상과 인물의 내면을 표현한다. 이 같은 콘셉트는 음악에도 녹아들었다. 정재일은 “트로이의 여인들에서는 캐릭터별로 다른 악기를 사용해 음악을 만들었다면, 이번 작업에서는 극 전체를 꿰뚫을 수 있는 음악의 질감이 중요하다”며 “고대로부터 내려온 듯한 음향들이 층층이 쌓인, 마치 퇴적암 같은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다”고 설명했다. 이어 “물이 흐르거나 물방울이 흩어지는 이미지를 소리로 나타내기 위해 인도네시아의 가멜란(합주음악)이나 아악의 편경·편종 소리를 찾아봤다”며 “이런 이미지가 극장을 꽉 채워 무대의 미장센이 음악처럼 보이고 들리도록 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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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창극단의 신작 ‘리어’에서 작곡을 맡은 정재일/LMTH 제공국립창극단의 신작 ‘리어’에서 작곡을 맡은 정재일/LMTH 제공


그가 꼽는 창극의 매력은 단연 깊은 소리에 있다. 20년 전 국악퓨전 그룹 '퓨리'에서 활동하며 전통 음악과 무속, 판소리를 공부한 그는 “한 사람이 엄청난 드라마를 만드는 판소리의 매력”에 매료됐다. “창극은 위대한 성악가(소리꾼)가 피 토해가며 새로운 이야기를 본인의 내밀한 이야기로 소화합니다. 내가 그런 창극의 한 부분을 담당하고, 그렇게 완성된 작품을 객석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합니다.”

한편 이번 작품은 30대 소리꾼인 김준수가 리어왕 역을 맡는 파격 캐스팅으로도 화제를 모으고 있다. 원작의 리어는 탐욕스러운 두 딸에 의해 처절하게 내몰린 후 막내딸 코딜리어의 진심을 깨닫는 80대의 노인이다. 리어 뿐만 아니라 두 눈을 잃고 비로소 장남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깨닫는 글로스터 역시 30대의 유태평양이 연기한다. 정재일은 “한승석 감독 본인이 워낙 훌륭한 소리꾼이다 보니 ‘저러다 (배우가) 죽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만큼 소리를 짜놓았더라”며 “젊은 소리꾼들과 작업하면서 음악적으로 더 많은 실험을 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장르를 넘나드는 정재일의 명곡들은 모두 ‘이야기를 듣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는 “음악은 모든 예술 장르에서 필요로 하는 가장 친한 친구”라며 “(음악을 만드는) 내게 주어진 특권이라고 생각하며 작업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장르마다 내가 임해야 할 접근이 다르기에 늘 초보자의 마음으로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다”며 “이게 내가 지금까지 다양한 작업을 해 올 수 있었던 원동력 같다”고 웃어 보였다.


송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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