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멕시코를 거쳐 육로로 미국 망명을 신청하는 러시아인들이 최근 늘고 있다고 외신이 1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AP통신에 따르면 지난해 8월부터 올해 1월까지 미·멕시코 국경에서 미국 망명을 신청한 러시아인들은 8600여 명으로, 1년 전 같은 기간의 249명보다 35배 급증했다. 10명 중 9명이 샌디에이고 국경 검문소로 들어왔다.
미국행을 원하는 러시아인들이 가장 자주 이용하는 경로는 러시아 모스크바-멕시코 캉쿤-멕시코 티후아나를 거치는 루트다. 러시아인들이 미국 비자를 얻는 것은 까다롭지만 멕시코 관광비자는 비교적 손쉽게 취득할 수 있기 때문에 일단 관광객으로 캉쿤에 입국한 후 다시 북부 국경도시 티후아나로 이동해 월경을 시도한다.
미국 이민을 원하는 중남미 이민자들은 대부분 걸어서 밀입국하는 방식을 택하지만 러시아인들은 주로 차를 타고 정식 검문소를 통과한다고 AP통신은 설명했다. 티후아나에서 값싼 중고차를 사거나 빌린 후 미국 국경을 넘자마자 망명 신청 의사를 밝히는 것이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전 정권 때부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을 이유로 망명 신청자들 상당수를 본국으로 추방하고 있지만, 러시아인들의 경우 다른 국적자들에 비해 미국에 남아 망명을 신청할 수 있는 확률이 높다. 이에 AP통신은 "(추방에 드는) 비용, 경색된 외교관계 등 탓에 일부 국가의 사람들은 본국 추방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미국행을 시도하는 전체 이민자 중 러시아인들이 차지하는 비율이 그리 높지 않음에도, 미 국경을 넘어 임시 보호소에 체류하는 이들 중엔 러시아가 상위 3개국 안에 든다고 로이터통신이 최근 전했다.
지난해부터 러시아인들의 미국행이 증가한 데엔 블라디미르 푸틴 정부의 반대파 탄압이 거세진 것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분석된다. 러시아 망명 신청자들을 돕는 변호사 율리야 파슈코바는 푸틴 정적인 알렉세이 나발니 수감 이후 러시아인들의 미국행이 늘었다며 푸틴 반대파, 동성애자, 무슬림, 기업인 등이 망명을 신청하고 있다고 AP통신에 말했다.
로이터는 미 국경 관계자들을 인용해 우크라이나 사태가 악화하면서 앞으로 러시아나 우크라이나 출신 망명 신청자가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츠바레프는 "(러 정부의) 탄압이 거세지고 있다. 반전 시위를 벌이는 이들이 가혹한 처분을 받는다"며 "러시아의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망명 루트를 이용하려는 이들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