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윤석열 정부의 첫 단추

한기석 논설위원

2003년 유가 폭등에 화물 기사 총파업

물류 대란이 국가 위기로, 비슷한 상황

정권 교체기 방치하다 일 터지면 늦어

신참내기 정부 첫 시험대 잘 통과해야





지난 2003년 3월 이라크 전쟁이 발발하자 그러잖아도 심상찮게 움직이던 국제 유가가 폭등하기 시작했다. 이제 막 출범한 노무현 정부는 경제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예상하지 못한 돌발 변수에 대처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고유가 폭탄을 가장 앞줄에서 있는 그대로 맞은 사람들은 화물 트럭 기사다. 이들은 자고 나면 오르는 경유 값을 감당할 수 없다며 정부에 해결책을 요구했다. 하지만 물가 문제만으로도 벅차하던 신참내기 정부는 이들에게까지 관심을 기울일 여유가 없었다.

5월이 되자 설립한 지 반 년도 되지 않은 화물연대가 ‘물류를 멈춰 세상을 바꾸자’는 구호를 내걸고 총파업을 벌였다. 화물연대는 고속도로 저속 운행, 톨게이트 동시 진입 등 새로운 파업 전술을 선보이며 전국의 물류를 멈춰세웠다. 14일간 파업으로 산업계는 11억 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손실을 입었고 국민은 정부 국가관리 능력의 민낯을 봤다. 화물연대의 2003년 총파업은 물류 대란이 국가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화물연대 파업을 계기로 “수송 기능이 국가 위기 수준으로 저하될 경우 이를 보완할 대책이 관련 매뉴얼에 따라 제대로 수립되고 있는지 점검하라”는 지시를 할 정도였다.



윤석열 정부가 오는 5월 10일 출범한다. 많은 사람이 행정과 정치 경험이 전무한 윤 대통령 당선인이 국정을 잘 수행할지에 대해 걱정한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 수행 능력을 가늠해볼 첫번째 시험대는 무엇이 될까. 북핵, 코로나19, 퍼펙트 스톰(초대형 복합 위기) 등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거기에 물류 대란을 추가해야 될 것 같다. 화물연대가 첫 파업에 나선 19년 전 상황과 지금이 상당히 비슷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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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상승 흐름을 타던 국제 유가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다. 올해 배럴당 200달러를 돌파한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고유가는 상당 기간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생산 확대를 위한 시설 투자를 못했고 미국의 많은 셰일 업체들은 파산했다. 고유가 폭탄은 벌써 화물 기사들의 생계를 위협하고 있다.

화물 기사들은 부산~서울 편도로 화물을 실어나른 대가로 1회에 50만 원 정도를 받는다. 한 달 20회 정도 일하니까 1000만 원 정도가 들어온다. 여기에서 기름 값, 요소수 값, 톨게이트비, 식사비 등 비용 300만 원, 차량 할부금 300만 원 정도를 빼면 월 400만 원 벌기가 빠듯하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경유 값이 ℓ당 1500원에서 2000원으로 500원가량 올라 기름값 부담만 월 300만 원 정도 추가됐다. 한 화물 기사에게 물어보니 “경유 값이 2000원이 되면서 집에 갖다 줄 돈이 없어졌다”며 “운행할수록 적자여서 쉬는 차량이 주위에 꽤 있다”고 하소연했다.

화물연대는 현재 노조원들의 실태를 조사하고 있다. 조사 결과에 따라 정부에 대책을 요구하겠지만 정권 교체기에 서로 의사 소통이 얼마나 잘될지 의문이다. 충분히 준비하고 대책을 마련해도 해결이 쉽지 않을텐데 장관이 취임해 실·국장과 과장까지 인사를 낸 다음 뭔가 해보려고 할 때는 늦어도 한참 늦었다.

이번에는 문제가 하나 더 있다. 2020년 도입한 화물 안전운임제가 올해 종료된다. 안전운임제는 과로·과속·과적 운행을 방지하기 위해 적정 운임을 보장해주는 제도로 화물 운송 업계의 최저임금이라고 보면 된다. 화물 기사들은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기와 전 차종, 전 품목 확대를 요구하고 있고 화주와 운수 사업자들은 반대하고 있다. 법 개정 사안인 만큼 여야 정치권까지 나서야 한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물류가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제품을 만들어도 배가 없어 실어나르지 못한 경우가 있었다. 트럭이 멈추면 배가 있어도 싣지 못한다.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에서 수출에 차질이 빚어지는 것은 여간 큰일이 아니다. 기호 2번을 찍지 않은 절반의 국민도 윤석열 정부가 성공하기를 진심으로 바랄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첫 단추를 잘 끼웠으면 좋겠다.


한기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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