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피플

"용서 강요하는 사회… 피해자 회복이 우선이죠 "

범죄 피해자 상담 20년 담은 '용서하지 않을 권리' 출간 김태경 서원대 교수

트라우마 치료 국내 최고 전문가

진술 신빙성 검찰·법원 등에 자문

용서는 회복 후 행하는 최후 행동

피해자들이 겪는 고통 공감하고

적절한 관심·건강한 지지 보내야

김태경 서원대 교수김태경 서원대 교수




“범죄 피해자들에게 용서란 치료를 통해 회복을 한 후 이루어지는 가장 마지막 단계의 행동입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처음부터 용서를 하라고 요구합니다. 피해자가 그럴 준비가 됐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묻지 않습니다. 용서를 강요하는 사회, 그게 우리의 모습입니다.”



최근 20년간 범죄 피해자들의 심리 분석과 상담·치료를 해 온 경험을 바탕으로 ‘용서하지 않을 권리’를 출간한 김태경(49) 서원대 심리상담학과 교수는 “이제는 범죄 그 자체가 아니라 피해자의 회복에 주목해야 할 때”라며 이같이 지적했다.

김 교수는 피해자의 진술 분석과 상담을 통해 검찰과 법원 등에 진술 신빙성 등에 대한 자문 의견을 주고 있는 임상수사심리학자다. 현재는 대법원 전문심리위원, 서울 동부스마일센터 센터장, 대검찰청 과학수사자문위원, 법무부 아동인권추진 자문위원 등을 맡고 있으며 트라우마 치료 권위자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달 펴낸 ‘용서하지 않을 권리’는 그의 첫 번째 저서다.

김태경 서원대 교수김태경 서원대 교수



그는 우리 사회가 범죄의 잔혹성만 따질 뿐 남겨진 피해자가 겪는 고통에 대해서는 귀 기울이려 하지 않는다고 일갈한다. 오히려 범죄가 일어나게 된 것에 대한 책임을 피해자에게 찾는다고 보고 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범죄 피해를 당했다고 하면 ‘오죽했으면’ 하고 생각을 합니다. 피해자가 뭔가 잘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과연 그럴까요. 그날 그 시각에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피해자는 나 자신이 됐을 수도 있습니다. 내가 피해자가 되지 않은 것은 운이 좋았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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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인식의 이면에는 ‘피해자는 그에 맞는 행동을 보여야 한다’는 소위 ‘피해자다움’이 깔려 있다는 것이 김 교수의 진단이다. 몸으로 체험한 피해자만의 특별한 경험을 머리로만 인식하려 든다는 것이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거나 직장 상사로부터 생각하기도 싫은 끔직한 일을 당한 사람들은 평생 그 경험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며 “같은 피해자라도 서로 기억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다르다. 똑같은 피해자다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역설했다.

가해자 중심으로 이루어진 사회, 법률 구조도 피해자의 회복을 더디게 하는 이유 중 하나라는 게 김 교수의 평가다. 대표적인 것이 형사재판. 재판 과정에서 피고인은 최소 국선변호인이라도 같이 오지만 고소인은 참고인 신분일 뿐이다. 소송 자체에서 아예 없는 존재나 다름없다는 뜻이다. 이뿐만 아니다. 재판을 할 때 감형을 받기 위해 피고인이 합의를 종용하는 경우가 상당수 존재한다. 합의가 되지 않으면 재판이 계속 연기되기도 한다. 고소인 입장에서 보면 형량을 깎을 기회를 너무 많이 주는 셈이다. 김 교수는 “피고인은 피해자의 진술서까지 볼 수 있지만 피해자는 재판정에 가지 않으면 어떤 판결이 내려졌는지 알 수조차 없다. 최소한 절차적 공정성만이라도 주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태경 서원대 교수가 사무실에서 범죄 피해자들의 임상 수사 관련 자료를 검토하고 있다.김태경 서원대 교수가 사무실에서 범죄 피해자들의 임상 수사 관련 자료를 검토하고 있다.


그는 피해자를 ‘살아남은 생존자’라고 표현한다. 범죄 대상자가 피해자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회복을 위해 싸우는 존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중요한 것은 피해자가 나와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돼 있는 존재라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는 점이다. 김 교수는 “피해자가 공동체의 일원이라고 할 때 그가 피해를 봤다는 것은 곧 우리도 똑같은 피해를 당했다는 것”이라며 “건강한 공동체라면 나의 일부가 손상돼 있을 때 같이 치유에 나서는 것이 당연하다”고 강조했다.

그에게 있어 피해자의 치유와 회복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적절한 관심과 건강한 지지’다. 적절함의 기준은 피해자에게 필요한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지나치거나 불필요한 관심은 자칫 2차 가해가 되기 쉽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지나친 관심과 연민은 오히려 피해자에게 해가 된다”며 “내가 상대방을 모른다는 전제하에 주변에 머물러 주며 필요할 때 도움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넘겨짚지 말고 기다리라’는 것이 그의 당부다.

글·사진=송영규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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