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코로나19 백신 '스푸트니크V'를 위탁생산(CMO)하기로 한 국내 기업들의 사업 전망이 갈수록 불투명해지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이어 유럽의약품청(EMA)까지 스푸트니크V의 평가 중단과 보류를 공식화했기 때문이다. 이미 휴온스글로벌(084110) 컨소시엄은 스푸트니크V CMO 사업 중단을 결정한 가운데, 다른 관련 기업도 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화에 따른 불안이 가중될 전망이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EMA는 러시아가 개발한 코로나19 백신 스푸트니크V에 대한 평가 절차를 보류했다고 지난 18일 외신을 통해 알려졌다. EMA 임상 연구 부문 책임자인 퍼거스 스위니는 지난 17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스푸트니크V 동반 심사에 대해 현재 해당 백신 동반 심사에 있어 아무런 활동이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러시아 당국과의 접촉도 없다면서 가까운 장래에는 이 같은 활동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목되지는 않았으나 스푸트니크V에 대한 EMA의 심사가 길어지는 가운데 앞으로도 허가 일정은 당분간 진행이 불투명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WHO는 국제 사회의 러시아 제재에 따라 스푸트니크V 평가를 중단한다고 지난 16일 공식화 했다. 항공편, 신용카드 사용 등 기술적인 문제라는 설명이다. 러시아 측은 2020년 10월에 WHO에 스푸트니크V의 긴급사용승인을 신청했지만, 아직 승인받지 못했다.
스푸트니크V는 러시아 보건부 산아 가말레야 국립 전염병 연구소가 개발해 2020년 8월 세계 최초의 코로나19 백신으로 승인됐다. 이후 70여 개국에서 승인받았지만 국제 보건 사회에서 공신력이 큰 WHO, EMA에서는 아직 승인받지 못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도 지난해 4월 스푸트니크V에 대한 사전검토에 착수했으나, 보완 자료 요청 과정에서 회신이 없어 현재는 절차가 중단된 상태다.
이미 스푸트니크의 국내 허가권과 판권을 가진 휴온스(243070)와 같은 그룹에 있는 휴온스글로벌은 지난 10일 추진 중이던 CMO 사업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7월부터 시생산 단계에 있었지만 휴온스글로벌은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라 "국제 사회의 제재로 인해 수출 및 대금 수급 등에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는 우려를 인식했고, 위탁생산 계약 효력 유지가 불가능할 것으로 판단해 숙고한 끝에 불가피하게 사업 중단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본생산에 진입해 휴온스글로벌 컨소시엄보다는 사업 단계에 앞서있는 한국코러스 컨소시엄도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한국코러스는 지난해 말 이미 스푸트니크V 생산을 시작하고 러시아 측의 출고 지시만 기다리고 있었지만, 이 과정이 기약 없이 길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통상 6개월 안팎인 백신의 유통기한을 감안하면 언제까지 기다릴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한국코러스 관계자는 "현재 중동 파트너를 비롯한 다른 관계자들과 판로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컨소시엄 내 이수앱지스(086890)도 기존 CMO와 병행해 러시아 측과 새로운 기술 이전을 추진 중이다.
문제는 전세계적으로 코로나19 팬데믹이 엔데믹(endemic) 단계로 접어들면서 코로나19 백신의 수요가 급격히 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미 화이자, 모더나, 노바백스 등 기존 백신에다 특허가 면제된 백신까지 저소득 및 개발도상국에 공급이 진행되고 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러시아 제재가 종료되고 스푸트니크V가 승인되는 시점에 전세계적으로 얼마나 코로나19 백신 수요가 남아있을지 의문"이라며 "CMO 기업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불안정한 계약을 계속해서 끌고 가기 보다는 차라리 다른 사업으로 빨리 전환하는 게 유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