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인 ‘예대금리차 공시 확대’를 위해 ‘월별 공시’ 방안을 검토하면서 금융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전문가들은 예대금리차는 대출 가산금리와 긴밀히 연관된 만큼 정부가 섣불리 개입할 경우 오히려 저소득자가 피해를 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자칫 은행들이 예대금리차 축소에 따른 리스크를 낮추기 위해 저소득·저신용자에 대한 대출 문턱이나 한도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인수위는 이달 말까지 금융위원회 등 파견 관료들과 논의해 예대금리차 공시 확대를 위한 세부 방안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윤 당선인 측은 “서민금융 공약은 반드시 이행한다는 원칙 아래 월별공시 등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고 밝혔다. 금융위도 파견 관료에 서민금융 업무 담당을 파견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앞서 윤 당선인은 예대금리차 정기 공시제 도입, 필요시 가산금리 적절성 검토 및 담합 요소 점검 추진 등을 약속했다. 기준 금리가 오를 때 금리 인상분이 대출금리와 예금 금리에 반영되는 속도가 달라 소비자의 부담이 늘어난다는 배경에서다.
하지만 금융업계와 전문가들은 윤 당선인 측의 예대금리차 공시 확대가 “제조업체에 제조 원가를 공개하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장 논리에서 벗어날 뿐만 아니라 목적인 서민금융 지원에도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김은갑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예대금리차·가산금리 규제나 개입이 매우 강해지면 은행 간 대출금리차가 거의 없어질 텐데 이는 소비자에게 유리한 듯하지만 부작용도 생각해야 한다”며 “대출금리 하락의 혜택이 대출자 모두에게 돌아가기는 힘들다”고 꼬집었다. 은행 간 대출금리차가 미미해지면 은행들이 리스크를 낮추기 위해 저소득?저신용자의 대출 문턱이나 한도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연구원은 이어 “반면 고신용 대출 수요자의 경우 유치 경쟁이 더해져 대출 수요자 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더 확대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예대금리차가 기준 금리 인상 이후 확대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예대금리차(잔액 기준)는 지난해 8월 2.12%포인트에서 올해 1월 2.24%포인트로 6개월 동안 0.12%포인트나 올랐다. 이렇게 보면 은행들이 가산 금리를 더해 이자 장사로 수익을 올렸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은행들의 예대금리차 확대가 대출 가산 금리보다 저원가성 예금이 증가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내놓았다. 김도하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가계대출 가산 금리 상승도 영향을 미쳤지만 더 주요한 원인은 준고정금리인 저원가 부채의 존재”라고 지적했다.
앞서 한국금융연구원은 장기적 금리 변화 추이를 근거로 제시하며 “은행이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예대금리차를 조정하는 약탈적 대출자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연구원이 지난 2004년 10월~2021년 9월 시장금리를 분석한 결과 잔액 기준 예대금리는 금리 상승기보다 하락기에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 콜금리(은행이 하루 기한으로 자금을 빌릴 때 적용되는 금리) 하락 국면에서는 예대금리차가 오히려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고 콜금리가 상승할 때는 예금금리와 대출금리가 거의 같은 수준으로 상승했다. 연구원이 은행의 수익성과 연관성이 깊은 잔액 기준으로 17년간의 금리 추이를 분석한 결과 금리 상승 국면(콜금리 0.12%포인트 상승 시)에서는 2개월 후 예금금리는 0.010%포인트, 대출금리는 0.011%포인트 올랐다. 예대금리차가 0.001%포인트 더 커지는 데 그쳤다. 반면 금리 하락 국면(콜금리 0.12%포인트 하락 시)에서는 4개월 시차를 두고 예금금리는 0.025%포인트, 대출금리는 0.042%포인트 떨어져 예대금리차(-0.017%포인트)가 오히려 줄어들었다. 이대기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소상공인 대출 만기 연장, 원리금 상환 유예 조치’를 해준 것처럼 저금리 기조에서 확대된 부실 위험이 금리 상승으로 현실화하면 은행의 수익성이 더 악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며 “금리 상승기에는 은행의 대손충당금 적립이 더욱 많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차기 정부가 ‘간섭 최소화’를 내세운 만큼 정책에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1980년대 이후 금리 자유화가 이뤄진 만큼 지나친 시장 개입은 원리에 어긋난다”며 “다만 아직 공약이 구체화되지는 않았으니 주의 깊게 지켜볼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