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장기화로 곡물 값이 고공 행진하고 있다. 이에 농기계·농업 관련 기업 및 상장지수펀드(ETF)들도 일제히 오름세다. 곡물 값 고공 행진에 ‘농기계 테슬라’로 불리는 디어앤드컴퍼니(DE)는 사상 최고가를 찍었다. 지정학적 위기 외에도 기후 변화, 물류 차질 영향이 겹치며 농산물 가격 상승세가 단기간에 꺾일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다.
18일(현지 시간) 뉴욕 증시에서 글로벌 농기계 1위 업체인 디어앤드컴퍼니는 전 거래일 대비 1.72% 오른 413.15달러에 마감했다. 시가총액은 1267억 달러(약 150조 원)로 뛰었다. 지난달 24일을 기준으로 하면 불과 한 달 만에 주가가 26.44% 올랐다. 지난달 24일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날이다.
디어앤드컴퍼니 주가를 끌어올린 건 곡물 가격 급등이다. 밀(소맥)의 경우 세계 전체 수출량의 40%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나온다. 그러나 전쟁으로 곡물 생산 차질이 불가피해지고 두 나라 항구가 폐쇄되면서 수출 길이 막혔다. 러시아는 밀 등 주요 곡물 수출을 오는 6월까지 일시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여기에 기후 조건도 곡물 작황에 악영향을 끼쳤다. 김희원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북반구는 한파, 남반구는 건조한 날씨로 작황 조건이 악화한 데 더해 지정학적 긴장감이 농산물 가격 상승에 일조했다”고 설명했다.
18일(현지 시간) 시카고상품거래소에서 거래된 소맥 가격은 부셸당 1063.75센트로 지난해 말 770.75센트 대비 38% 상승하며 사상 최고가까지 치솟았다. 통상 곡물 가격이 오르면 농부들은 재배 면적을 늘리게 되고, 농기계 수요가 늘어난다. 키움증권에 따르면 디어앤드컴퍼니의 올해 영업이익 추정치는 87억 달러(약 10조 5705억 원)로 전년 대비 26% 증가할 전망이다. 수익성의 추가 개선도 기대된다. 올해 영업이익률은 전년(15.6%)보다 2.4%포인트 오른 18%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디어앤드컴퍼니는 농기계에 빅테이터·자율주행 등 첨단 기술을 도입하며 ‘농기계 업종의 테슬라’로 불린다. 디어앤드컴퍼니는 2017년 빅데이터·인공지능(AI) 벤처 회사인 블루리버테크놀로지를 인수한 뒤 농업 생산성 향상을 위해 농업용 빅데이터를 수집하고 농장 자동화 기술 등을 개발하고 있다. 올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2에서는 자율주행 트랙터를 선보이기도 했다. 향후 수익이 증가한 농가가 신형 자율주행 트랙터 구입에 나설 경우 디어앤드컴퍼니의 수익성 개선세는 더욱 가팔라질 전망이다.
농산물 수급이 좀처럼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서 ETF도 가격이 뛰고 있다. 반에크 농업비즈니스 ETF(MOO)와 아이셰어즈 MSCI 글로벌 농업 제조업체(VEGI)는 지난 18일을 기준으로 최근 한 달 사이 각각 7.95%, 8.8% 올랐다. 이들 ETF는 농업 관련 기업에 투자하는 게 특징이다. 둘 다 디어앤드컴퍼니, 캐나다 비료 회사 뉴트리엔, 세계 4대 곡물 기업인 아처 대니얼스 미들랜드, 북미 최대 비료 생산 업체인 모자이크컴퍼니를 담고 있다. 농산물 자체에 투자하는 ETF도 가격이 오름세다. 종합 농산물 선물 ETF(DBA)는 18일 기준 최근 한 달 사이 2.8%가 올랐다. 10대 농산물 선물에 투자하는 상품으로 10일 기준 밀 14.91%, 대두 13.69%, 옥수수 13.68%, 설탕 11.09%, 커피 10.82% 등을 담고 있다.
지성진 키움증권 연구원은 “곡물 수급 불균형으로 인한 곡물 가격 상승은 미국 및 남미 농업 사업자들의 수익성 개선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라며 “신규 농업 기계 장비 수요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관련 기업들에 호재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