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치·사회

[기자의 눈] 푸틴의 '오판'과 러시아의 운명

조양준 국제부 기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종종 상대를 곤경에 빠뜨릴 정도의 도발을 하곤 했다. 심지어 국가원수도 도발의 대상이 됐다. 푸틴은 지난 2007년 1월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가 자신의 관저를 찾았을 때 실내에 대형견 한 마리를 풀어 놓았다. 메르켈이 개한테 크게 물려 트라우마가 있다는 사실을 악용해 기선을 제압하려 했다는 것이 후일담으로 전해졌다. 미국 언론인 케이티 마튼은 푸틴이 KGB 요원 시절 이런 고약한 기술을 익혔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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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은 한 달 전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또 한 번 야심에 찬 도발을 감행했다. 이번에도 2014년 힘에서 밀려 크름반도를 빼앗긴 우크라이나의 트라우마를 노렸지만 상황은 그의 의도와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러시아군은 고전하고 있으며 체면을 구긴 러시아는 전사자 2500명을 야밤에 몰래 옮길 정도로 고전을 숨기고 있다. 서방 정보 당국은 러시아군이 전쟁 장기화를 전혀 대비하지 않았다고 본다. 영토 확장에 대한 의욕만 앞세워 준비도 없이 전면전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지도자의 섣부른 선택이 국가를 얼마나 큰 위기에 빠뜨릴 수 있는지 다시 한 번 깨닫게 한다. 국제은행간통신망(SWIFT)에서 쫓겨난 러시아는 국채 이자를 갚을 때마다 돈이 제대로 송금됐는지 확인해야 하는 처지다. 그래야 ‘국가 부도’를 막을 수 있어서다. 미국에 이어 유럽도 러시아의 최대 자금줄인 원유에 금수 조치를 내릴 기세다. 사태가 길어질수록 더욱 불리하다. 스콧 베리어 미 국방정보국장은 “전쟁 장기화는 러시아를 오랜 경기 침체와 외교적 고립에 빠뜨릴 것”이라며 “힘이 약해진 러시아는 핵무기에 의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고립된 채 경제 지원을 요구하려 핵 도발을 이어가는 나라. 한 마디로 러시아가 ‘거대한 북한’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건 러시아 제국의 부활을 꿈꾼다는 푸틴의 야망과도 너무나 차이가 크다.

자국도, 우크라이나도, 아니 그 어느 누구도 득이 없는 전쟁은 당장 중단돼야 한다. 푸틴이 우크라이나에서 실패한다면 우크라이나의 결사 항전도, 서방의 제재 탓도 아니다. 스스로 거둔 결과일 뿐이다.


조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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