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로터리] 표준어와 지역어의 서로 다른 가치

장소원 국립국어원장






몇 년 전 ‘말모이’라는 영화가 인기를 끌었다. 일제강점기에 국어사전을 펴내기 위해 고초를 겪은 이들의 모습을 그린 영화로 모든 내용이 사실과 일치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주인공에 대해서도 사전 편찬 시 주필을 맡았던 건재 정인승 선생이라는 주장과 영화 속 대사인 “말은 민족의 정신이요, 글은 민족의 생명이다”가 조선어학회의 중심 인물이었던 고루 이극로 선생이 한 말이니 주인공은 이극로라는 주장이 엇갈린다. 또 전국 각지 출신의 전과자들을 동원한 사투리 수집 장면은 허구지만 ‘한글’ 잡지에 실린 ‘전국의 사투리를 보내 달라’는 광고를 보고 수많은 이들이 사투리를 보낸 것은 사실이다. 조선어학회가 전국의 국어 교사를 모아 공청회를 열고 그 결과로 1936년에 ‘조선어 표준말 모음’을 간행했으니 영화 속 공청회 장면은 직접적인 사전 편찬 작업이 아니라 그에 앞서 표준어를 사정하는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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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어는 꼭 써야 하는 걸까. 표준어의 정의가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이면 사투리를 쓰는 사람들은 교양이 없다는 말인가. 한마디로 그렇지 않다. 하지만 이 말이 표준어가 필요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같은 대상을 가리키는 말이 지역마다 다르면 원활한 의사소통이 어렵기 때문에 단어별로 대표를 정해 놓은 것이 표준어다. 어느 나라 사전에서든 ‘○○ 지역에서 사용하는 방언’이라는 별도의 표식이 없으면 사전 속 단어들은 모두 표준어다. 필자가 대학을 다니던 1980년대에 이익섭 서울대 교수는 통일의 기능, 준거의 기능, 우월의 기능을 들어 표준어를 설명했고 그 내용은 이후 중학교 교과서에도 실린 바 있다. 지금은 시대가 바뀌어 전 국민이 무상 교육을 받고 쉽게 표준어를 알 수 있으니 표준어를 쓴다고 해서 우월감을 느낄 일은 아니다.

‘사투리’ 또는 ‘방언’으로 불리는 지역어가 지닌 가치는 무엇일까. 동향인들끼리 유대감을 조성하고 언어의 다양성을 보존해 한국어 단어의 폭을 확대한다는 점 외에도 지역어가 학술적으로 기여하는 바는 무궁무진하다. 이제는 우리말에서 사라진 과거의 소리가 특정 지역어에는 남아 있고, 과거 문법의 흔적이 지역어에 고스란히 유지되고 있기도 하다. 우리나라 전국의 지역별·세대별 언어 다양성을 조사하고 총괄하는 기관은 국립국어원이다. 표준어의 기능에 대해 강의했던 이익섭 교수는 은퇴 후 매달 당신의 고향인 강릉을 오갔다. 10년에 걸쳐 그곳 토박이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만나 그들의 말을 직접 녹음하고 종이에 옮겨 적은 후 다시 컴퓨터에 입력하고 단어마다 풀이를 붙여 3000쪽에 가까운 ‘강릉방언사전’으로 출판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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