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피플

"박물관은 정답 아닌 영감·호기심 주는 공간"

국내 유일 철박물관 장인경 관장

선친인 故 장상철 동국제강 사장

유지 살리기 위해 2000년 설립

과거 아닌 지금에 답하는 게 중요

전기로 숨은 내역 밝히는데 주력

"사람 중요하게 여기는 곳 만들고파"

장인경 철박물관장이 서울 성북동에서 기름집을 하던 최봉순 할머니가 기증한 기름 짜는 기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장인경 철박물관장이 서울 성북동에서 기름집을 하던 최봉순 할머니가 기증한 기름 짜는 기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전 대기업 사장의 딸이다. 박물관을 직접 세우고 운영까지 한다. 당연히 화려한 모습을 하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사무실 문을 열고 얼굴을 마주한 순간 선입견은 여지없이 깨졌다. 허름한 청바지에 헝클어진 머리. 업무에 파묻힌 일꾼의 모습이다.



충북 음성에서 만난 장인경(63) 철박물관장은 원래 철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었다. 지금은 국제박물관협의회(ICOM) 한국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고 아시아태평양지역연합 위원장을 지내기도 했지만 이는 한참 후의 얘기다. 미국 유학 때의 전공은 미술이었다. 스스로 ‘과학이 약하다’고 할 정도다. 유일한 끈은 할아버지가 동국제강 창업주 고(故) 장경호 회장, 4남 고 장상철 사장이 아버지라는 점.

장인경 철박물관장이 선친인 고(故) 장상철 동국제강 사장과의 추억을 회상하고 있다.장인경 철박물관장이 선친인 고(故) 장상철 동국제강 사장과의 추억을 회상하고 있다.


그런 장 관장이 지난 2000년 철박물관('세연출박물관'에서 2004년 개명)을 세운 것은 선친의 유지를 받들기 위함이었다. “아버지께서 미국에 계실 때 ‘여기는 아직 옛날 기계를 많이 쓰는데 이것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작동되는가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재미있어 하겠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아버지의 이러한 유지를 살려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철박물관은 많은 전시물을 자랑하는 곳이 아니다. 보유 건수는 약 5100건, 작품으로 보면 9000여 점밖에 안 된다. 보물이나 국보는 더더욱 없다. 화려한 전시물을 자랑하는 곳들과 비교하면 초라할 정도다.

장인경 관장이 충북 음성 철박물관 부지 한가운데 있는 15톤짜리 국내 최초의 전기로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장인경 관장이 충북 음성 철박물관 부지 한가운데 있는 15톤짜리 국내 최초의 전기로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대신 철박물관에는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철학을 가지고 있다. 장 관장에게 박물관이란 과거의 물건을 보여주거나 정보를 제공하는 장소가 아니다. 그런 것들은 인터넷을 뒤지면 누구나 손쉽게 찾을 수 있다. 대신 박물관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를 보여주는 데 주력한다. 그는 “박물관은 정답을 찾는 곳이 아니다”라며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사람들에게 호기심을 주고 영감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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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대표적인 것이 정문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무게 15톤짜리 전기로다. 1966년 국내 최초로 만든 이 전기로는 동국제강 부산제강소가 포항으로 이전할 때 이학수 당시 소장에게 부탁해 공수해 온 것이다.

그가 이 전기로에 매달린 것은 어릴 적 아버지의 손길과 추억을 느낄 수 있어서기도 하지만 다른 이유도 있다. 그에게 전기로는 과거와 지금의 우리가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알 수 있는 소통 수단이다. 그는 “전기로는 지금 산업 현장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설명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라며 “이를 통해 50년 후 지금 사회현상을 무엇이라고 할 것인가 대답할 수 있는 안목을 제공하는 곳”이라고 지적했다. ‘예전에 어떠했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이 어떠냐는 게 중요하다’던 부친의 모습이 그를 통해 투영된다.

친절도 장 관장이 박물관을 얘기할 때 빼놓지 않고 강조하는 것 중 하나다. 사람들은 자신이 대접받을 때 마음을 열고 무엇인가를 받아들이지만 소홀히 한다는 생각이 들면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근다는 게 그의 평가다. 장 관장은 “관람객들의 마음이 닫혀 있으면 박물관이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가 없다”며 “직원들에게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을 부탁을 할 경우 대답은 ‘노(No)’라고 하되 그 뒤에 알아보겠다는 말을 항상 하라고 얘기한다”고 덧붙였다.

장 관장은 최근 ICOM 활동을 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고 고백했다. 그중 하나가 우리나라가 너무 내 것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는 것이다. 그는 “박물관에 가 보면 한국인의 정체성은 조선과 일제 침탈에만 멈춰져 있는 것 같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지금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설명하는 것인데 이를 하지 않는다”며 “이러한 것들이 무너지려면 박물관이 변해야 한다는 것을 ICOM에서 배웠다”고 설명했다.

장 관장은 요즘 언젠가 떠나야 할 때를 대비해야 한다는 생각을 부쩍 많이 한다고 했다. 그래서 부쩍 중점을 두는 것이 일하기 편한 박물관을 만드는 것이다. 전기로의 숨은 내역과 비밀을 밝히는 데 신경을 많이 쓰는 것도, 최근 들어 소장 자료 정리에 부쩍 힘을 기울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박물관 운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며 “일할 만한 직장, 좋은 직장을 만들어 뒤에 온 사람으로부터 정말 잘했다고 칭찬 받는 게 마지막 할 일”이라고 말했다.

글·사진=송영규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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