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4일(현지시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된 이후 이를 다루는 기사에는 이런 댓글이 등장합니다. '21세기에 전쟁이라니..'. 당장 네이버에 '21세기 전쟁'이라는 키워드로 검색해도 비슷한 제목의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요. 많은 네티즌들은 '21세기에 전쟁이라니 너무 야만적'이라거나, '21세기에 전쟁이라니 생각지도 못한 일'이라는 반응을 보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관심을 두지 않았을 뿐, 사실 21세기에도 전쟁은 계속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수백만명 상당의 피란민을 발생시킨 대규모 전쟁이요. 바로 에티오피아 등 아프리카와 시리아 등에서입니다. 이번 '김연하의 글로벌체크'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여타 지역에서의 전쟁을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 차이에 대해 짚어봅니다.
■에티오피아 내전으로 피란민 200만명…예멘 등서도 전쟁 수년째 지속
먼저 에티오피아의 상황을 살펴볼까요. 에티오피아 북부 지역에서는 에티오피아 정부군과 반군인 티그라이인민해방전선(TPLF) 간의 내전이 16개월간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내전으로 인해 민간인이 학살된 것은 물론 200만명 상당의 피란민도 발생했죠. 전쟁으로 인한 폭력과 기아로 인해 이미 50만명 이상이 사망했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에티오피아만이 아닙니다. 예멘에서도 정부군과 후티 반군 사이의 내전이 지난 2014년부터 계속되고 있습니다. 유엔난민기구(UNHCR)은 이로 인해 이미 400만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했다고 밝혔고, 세계식량계획(WFP)은 이 지역의 식량 문제에 대해 경고하기도 했죠. 과거 수백만의 유럽행 난민을 촉발시킨 시리아에서도 12년째 전쟁이 이어지고 있고요.
이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BBC는 "아프리카인의 관점에서 볼 때 세계 강대국들이 갈등을 줄이기 위해 최선을 다해 단결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인상적인 동시에 좌절감을 주기도 했다"고 전했습니다. 이어 "어느 누구도 핵으로 무장한 초강대국이 포함된 전쟁이 더 파멸적인 상황으로 이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유엔 결의와 상당한 제재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면서도 "(아프리카 전쟁의 경우) 우려한다는 성명과 국제 특사 파견이 있긴 했지만 전면적인 보도는 물론 세계 지도자들의 생중계와 적극적인 도움을 주겠다는 제안도 없었다"고 덧붙였습니다. 국제사회가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해결에 나선 반면 아프리카 등 여타 국가에서 벌어지는 전쟁에는 눈을 감고 있다는 점을 비판한 겁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유독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서만 더 많은 관심을 갖는 걸까요?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여러가지 이유를 제시하는데요, 먼저 우크라이나 전쟁은 여타 전쟁과 달리 '글로벌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시카고대 경제학자이자 '왜 우리는 싸우나:전쟁의 기원과 평화의 길'의 저자인 크리스토퍼 블랫먼은 NPR에 "우크라이나 사태는 지역 분쟁 그 이상이다. 이것은 잠재적인 글로벌 전쟁(conflagration)"이라며 "초강대국들이 특정 편을 들고 있으며, 핵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이게 전부는 아닙니다. 미국 등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그들이 아프리카나 중동과 달리 우크라이나와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는 인식 때문이기도 합니다. 블랫먼은 "일반적으로 말해서 어떤 사회이든지 지리적으로 더 가깝거나 (인종이나 종교적으로) 사회적 정체성을 공유하거나 언어를 공유하거나 제국주의 혹은 식민지의 역사를 공유하는 곳의 갈등에 더 관심을 갖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밝혔습니다.
■문명화된 유럽에서의 전쟁이라 충격적?
문제는 이들이 느끼는 이 ‘공통점’이 때로는 인종차별적인 발언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겁니다. 한 전직 우크라이나 관료는 침공 후 BBC와 가진 인터뷰에서 "파란 눈과 금발의 유럽인들과 아이들이 매일 살해당하고 있다"고 말했는데요, 이 발언은 인종차별적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죠.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미CBS의 한 기자도 키이우(키예프)에서 리포팅하던 당시 "우크라이나는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처럼 수십년간 분쟁이 있었던 곳이 아니다"라며 "이곳은 비교적 문명화되고 유럽적인 도시"라고 말했습니다. 이 같은 발언이 논란이 되자 그는 이후 "잘못된 단어를 사용했다"며 "몇 년 동안 전쟁을 겪으며 고통받아온 나라들과 달리 우크라이나에서는 최근에 이런 규모의 전쟁을 겪지 않았다는 것을 전하고 싶었다"고 해명했습니다.
이런 사례는 너무도 많습니다. ITV뉴스의 한 기자도 "우크라이나는 제3세계 개발도상국이 아니다. 여기는 유럽이다"라고 말했고요, 다니엘 해넌 전 영국 보수당 의원은 영국 텔레그래프에 기고한 글에 "그들은 우리와 매우 닮았다. 그것이 이를 매우 충격적으로 만든다"며 "전쟁은 더 이상 빈곤하고 외딴 지역의 사람들에게만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사실상 전쟁은 ‘부유하고 주류’인 유럽에서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반면, ‘가난하고 비주류’인 국가들에서만 일어나는 것이라는 이들의 생각을 드러낸 것이죠. 이 밖에도 지난해 탈레반 정권을 피해 자국을 탈출한 아프가니스탄인들은 '이민자'라고 칭한 반면 현재 러시아군을 피해 자국을 떠난 우크라이나인들은 '난민'이라고 칭하는 것도 다분히 인종차별적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이민자는 보통 조국을 자의로 떠난 이들을, 난민은 타의에 의해 조국을 떠난 이들을 칭한다는 차이점을 보이기 때문이죠.
이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NPR은 우간다의 기자 재클린 케미기사를 인용해 "이는 (보호할 가치가 있는) 인간이라는 것을 청중에게 알리는 신호"라며 "백인우월주의와 자본주의 체제가 만든 계급제 하에서 하층에 있는 유색인종들의 생명은 (보호할 가치가 있는 것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BBC도 "한 앵커는 중동이나 북아프리카 지역을 벗어나려는 난민들이 아닌 부유한 중산층 우크라이나인들이 난민이라는 것을 보고 경악했다"며 "프랑스 방송의 한 전문가는 '우크라이나인들은 우리와 같은 차를 운전한다'고 발언하며 프랑스와 비슷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는데 이는 아프리카인들은 멋진 차를 운전한다는 것을 상상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이는 인종이 아닌 경제적 격차에서 나온 ‘차이’라고 주장하기도 하는데요, 사실 2020년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볼 때 아프리카 국가인 나이지리아는 27위, 남아프리카공화국은 38위, 알제리는 54위입니다. 이라크도 49위인 반면 우크라이나는 57위죠. 이 같은 발언이 경제적 격차보다는 인종차별에서 나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겁니다.
물론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은 에티오피아 등에서 발발한 여타 전쟁과 비교할 때 영향력 면에서 차이가 크긴 합니다. 특히 이번 러시아의 침공은 우크라이나 한 곳을 노렸다기보다는 미국 등 ‘서방’을 대상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국제사회가 더욱 적극적으로 대처에 나서고 있다고 봐야 하죠. 하지만 이 이유만으로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시선에 인종차별이 섞였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동시에 반성해봅니다. 어쩌면 그간 아프리카와 중동 등지에서 발생하는 전쟁을, 그리고 그로 인한 수백만의 난민들을 일상적이고 당연한 것으로 여겨온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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