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금융정책

"배당 줄여라·대출 조여라"…정부 과도한 개입땐 시장 뒤죽박죽

[그래도 시장경제가 답이다] <3> 관치금융의 유혹을 버려라

은행 이자장사 비판에…인수위 예대금리차 매달 공시 추진

자영업 만기연장·상환유예 손실도 정부 아닌 은행이 떠맡아

당국 규제에 관치 그림자 드리우면…결국 피해는 '소비자 몫'


# 1. 지난해 초 금융위원회는 은행지주와 은행들의 배당성향을 20% 이하로 유지할 것을 권고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은행들의 손실흡수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4대 금융지주의 순이익은 전년보다 늘었지만 오히려 배당액은 줄었다. 주주들은 반발했다. 권고이지만 당국의 권고를 무시했다가는 후폭풍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은 주주 반발의 위에 서 있었다.

# 2. 금융 당국은 지난해 가계 건전성을 우려한다는 취지로 은행들의 연간 가계대출 증가율을 6% 이내로 제한했다. 갑작스러운 총량규제에 시장은 혼란을 겪었다. 각 은행들의 대출 가능 총량이 소진되기 전에 선착순으로 대출을 받아야 했고 이 때문에 필요 없는 대출까지 미리 받아놓으려는 가수요까지 생겼다. 금리는 올랐고 결국 피해는 소비자의 몫이었다.









금융은 규제 산업이다. 시스템 리스크가 현실화될 수 있기에 시장 합리성에만 맡겨둘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금융 당국의 규제는 때때로 합리적인 규제가 아닌 ‘관치’로 이어진다. 은행연합회가 20대 대통령선거 전 각 대선 주자 캠프에 “정책 사업에 은행을 동원하는 사례가 잦다. 금융이 다른 산업을 지원하기 위한 도구와 수단이라는 사회적 통념을 없애 달라”고 건의한 것은 관치를 거부하겠다는 의지를 점잖게 표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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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금융권과 정치권 등에 따르면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은행의 예대금리차를 매달 공시하도록 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후보 시절 내세웠던 공약에도 금융 소비자 보호 및 권익 향상을 위해 예대금리차 주기적 공시 제도를 도입하는 내용이 담겨 있기는 했지만 실제로 인수위가 이를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자 금융권의 속내는 적지 않게 불편한 모습이다. 금융권은 원가까지 공개하는 정부의 움직임은 과도한 시장 개입이자 ‘관치’라고 바발한다. 시장 원리에 의해 결정해야 할 금리마저 정부가 개입하기 시작할 경우 시장이 왜곡될 수 있고 금융기관 역시 경영에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대금리차 공시 제도는 결국 은행이 과도한 이자 장사로 막대한 수익을 얻고 있다는 비판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지난해 말 기준 국내 19개 시중은행의 예대금리차는 1.81%포인트로 2020년보다는 0.03%포인트 높지만 2019년보다는 오히려 0.14%포인트 낮은 수준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어쩔 수 없었다’는 평가도 있지만 중소상공인과 자영업자에게 지원하는 만기연장·상환유예 조치도 ‘관치’라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 당국은 올해 9월까지 금융지원 연장을 결정했다. 이는 윤 당선인의 주요 공약 중 하나였다. 문제는 지원 조치가 이미 네 차례나 연장되면서 지원이 종료되는 시점에 발생할지 모르는 은행 부실이 갑작스럽게 증가할 수 있다는 점이다. 금융 당국은 최근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을 올해 6월 이후 점진적으로 높이기로 하는 등 금융 지원 종료 이후 시장 충격을 대비하기 위한 조처를 수립했다. 하지만 연장에 연장을 거듭하지 않았다면 우리 경제에 부담이 될 일은 애초부터 없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재정을 통해 지원해야 할 부분을 민간 은행이 상당 부분 떠맡은 셈”이라며 “은행 돈은 언제든지 꺼내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금융 산업의 특성상 정부의 규제는 필요하다. 하지만 시장에 과도하게 개입하기보다는 디지털 혁신 시대에 맞춰 금융 산업이 빠르게 변화하는 만큼 낡은 규제를 버리고 실물경제와 융합되는 발전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미국의 비자카드는 지난해 유럽 오픈뱅킹 플랫폼인 스웨덴의 ‘팅크’를 18억 유로에 인수했다. 마스터카드도 2019년 32억 달러를 써 덴마크의 A2A 기반 디지털 지급 인프라 기업인 ‘넷츠’를 사들였다. 글로벌 금융회사들도 미래 성장을 위해 적극적으로 핀테크 기업을 인수합병(M&A)하고 있는데 우리 금융회사들은 은행이 비금융 스타트업 지분을 15% 이상 보유할 수 없도록 하는 등의 규제에 묶여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은행들이 지금도 통신·배달·미술품 등 새로운 먹거리를 키우고 있지만 비금융 서비스의 진출 범위를 확대해 금융과 비금융을 융합한 신사업이 개발될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은행이 가상자산이나 인공지능(AI) 활용 투자 일임 서비스를 할 수 있도록 해 자산관리(WM) 분야의 혁신을 유도하는 정책도 필요하다.

플랫폼 경쟁력을 강화해 디지털 유니버설 뱅크로 진화하고 있는 은행들은 개인 맞춤형 금융 서비스를 위해 데이터 규제 완화를 우선 해소해야 할 규제로 꼽는다. 디지털 유니버설 뱅크는 하나의 ‘슈퍼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은행·보험·증권 등 다양한 서비스를 통합 제공하는 것을 일컫는다. 금융 산업이 신수종을 발굴할 수 있도록 기반 조성도 요구된다. 은행 업계는 “앞으로도 경제의 혈맥으로서 실물경제에 자금을 공급하고 사회환원에 앞장서 국민의 기대에 부응할 것”이라고 했다.

박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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