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책꽂이] 깨우침의 소리…천년의 울림…

■한국의 범종

최응천 지음, 미진사 펴냄

범종, 과학·사상·예술의 완성체

'세속 번뇌'서 벗어나길 바라는

종교적 의지 총체적으로 담겨

59개 범종소리 QR코드로 수록

국보 성덕대왕신종. 사진 제공=국립경주박물관국보 성덕대왕신종. 사진 제공=국립경주박물관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소설 ‘대지’의 작가 펄 벅(1892~1973)은 한국 방문 때 들른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만난 국보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는 “이 범종 하나만으로 박물관을 짓고도 남음이 있다”면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미술사학자이자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인 최응천 동국대 교수가 자신의 새 책 ‘한국의 범종’을 소개하며 펄 벅의 사례를 들었다. “한국 불상의 집약을 석굴암에서 찾을 수 있듯이 통일신라 당대의 과학, 문화, 사상과 예술을 포함한 금속공예의 총체적인 완성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성덕대왕신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는 이유에서다.

범종은 주로 불교 사찰에서 시간을 알리거나 대중을 모이게 하는 의식에서 사용된 종을 일컫는 말이다. 범종은 깊이 있는 소리와 긴 울림이 가능하도록 제작하는 과학 기술, 음(音)과 형(形)을 비롯해 외관의 문양·장식이 보여주는 예술성, 종 소리를 듣는 이들이 세속의 번뇌에서 벗어나길 바라는 종교적 의지가 총체적으로 담겨 탄생한다.

신간 ‘한국의 범종’은 범종 기원과 전래, 한국 범종 구조와 특징·시대별 변천 과정을 한 권에 담은 책이다. 약 600쪽 분량으로 두툼하다. 한국의 대표 범종이라 불릴 만한 59개 범종을 별도로 소개하며 세세한 사진과 설명은 물론 종소리를 들을 수 있는 QR코드까지 수록했다. 그야말로 ‘범종사전’이다.




저자는 대학 때 실상사 파종(破鐘·깨진 종)의 복제본 탁본을 뜨면서 범종과의 첫 인연을 맺었고, 이후 1989년 일본 후쿠오카시 박물관 개관 때 유물관리관으로 파견 근무하며 범종에 몰두할 결정적 계기를 맞았다. 일본에 머물면서 아마기시의 아키즈키 성터 지하에서 나온 고려 범종의 조사를 의뢰받았다. 일본 현지의 지하에서 발견된 최초의 고려 범종이었기에 귀국 후 이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면서 저자의 ‘범종 인생’이 시작됐다. 이후 일본 규슈 지역의 한국 범종을 조사했고 일본 전역에 분포한 50여 점에 달하는 한국 범종을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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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는 근대에 이르기까지 60여 점에 달하는 한국 범종이 남아있었지만 전쟁과 화재로 10점이 사라졌고 현재 소재가 파악된 우리나라 범종은 48점으로 파악됩니다. 이 중 연지사명 조구진자 종을 비롯한 4점이 통일 신라 범종입니다. 국내에 남아있는 완전한 형태의 통일 신라 범종이 3점에 불과하고, 특히 9~10세기에 만들어진 통일 신라 후기의 범종이 단 한점도 남아있지 못한 상황에서 일본에 있는 한국 범종은 절실할 만큼 중요했습니다.”

국보 상원사 종의 연뢰 부분. 사진 제공=문화재청국보 상원사 종의 연뢰 부분. 사진 제공=문화재청


국보 성덕대왕신종의 천인상. 사진 제공=문화재청국보 성덕대왕신종의 천인상. 사진 제공=문화재청


국보 상원사 종의 용뉴. 범종을 매달 수 있게 하는 연결부위를 용머리 형태로 장식한 것이다. 사진 제공=문화재청국보 상원사 종의 용뉴. 범종을 매달 수 있게 하는 연결부위를 용머리 형태로 장식한 것이다. 사진 제공=문화재청


국보 상원사 종. 사진 제공=문화재청국보 상원사 종. 사진 제공=문화재청


일례로 일본 스미요시진자 소장의 범종은 높이 142.2㎝의 초대형 범종으로, 한때 일본 국보로까지 지정됐던 유물이다. 양식적으로도 매우 우수한 고려 초기의 작품이다. 이 스미요시진자의 종을 제외하면 일본 내 한국 범종 대부분은 높이 70~80㎝ 안팎의 중형 범종이다. 이에 대해 최 교수는 “일본 측이 우리나라에서 종을 가져갈 때 이동이 간편한 중형 이하의 범종을 대상으로 삼아 해상 운반이 용이한 해안가 일대의 사찰, 신사 등에 옮겨간 것임을 짐작하게 한다”면서 “우리의 범종은 고려의 불화와 도자기 못지 않게 탁월한 예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일본에 있는 한국 범종을 비록 당장 찾아올 수는 없지만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당부했다.

미술사학자 최응천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 겸 동국대 교수. /서울경제DB미술사학자 최응천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 겸 동국대 교수. /서울경제DB


책의 전반부는 한중일 고대 범종의 양상, 한국 범종의 시대별 변천 등 학구적 내용들이 차지했다. 쉬운 말로 쓴 용어 정리가 어려움 없이 책장을 넘기게 한다. 저자는 범종 표면의 돌기형 장식을 일본 용어인 ‘유두’ 대신 ‘연뢰(蓮雷)’라는 우리식 표현으로 칭하게 만든 주인공이다. 그는 “우리 범종 표면에는 연꽃봉오리 형태로 돌출된 연뢰가 반드시 9개씩 배치돼 있다”면서 “영락없는 연꽃봉오리인데 굳이 일본 종의 명칭을 좇아 쓸 필요는 없다”고 힘주어 말한다.

책 후반부 ‘한국의 범종 아카이브’는 우리나라 범종 가운데 가장 오래된 국보 ‘상원사 종’으로 시작된다. 저자는 상원사 종에 대해 “가장 오래된 종일 뿐만 아니라 통일신라 범종의 절정기 작품”이라며 “이전부터 발전돼 온 범종의 양식이 통일신라에서 정점에 이르러 제작된 상원사 종이 이후로도 전형적 양식을 이뤘고 어떤 연유에서인지 지금까지 남아 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저자의 목소리에는 범종에 대한 자랑스러움과 안타까움이 혼재했다. 산불로 녹아내린 낙산사 종, 무리한 타종으로 깨진 채 옮겨진 보신각 종 등 천년을 이어온 깨우침의 소리를 현대의 우리가 제대로 지키지 못한 측면 때문이다.

저자는 “전국 곳곳에 산재한 크고 작은 사찰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하디 흔한 것 중 하나가 범종이라 우리가 그 소중함을 잘 모를 수 있다”면서 “역사의 변화 속에서 새로운 시도와 양식이 나타났지만 분명한 것은 범종이 한국 금속공예사와 불교 공예 최고의 산물이라는 점, 그것이 외국에서도 탐낼만큼 우수한 것이었다는 사실"이라고 강조했다.4만원.


조상인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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