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러 '가스' 美 '광물' 中 '희토류'로 으름장…제2 오일쇼크 덮치나

■확산되는 '에너지 무기화'

푸틴 '가스대금 루블 결제' 서명…'페트로 달러' 지위 흔들어

美, 리튬 등 국방물자생산법 적용해 청정에너지 전환 가속

獨 신재생·佛 원전 확대…中은 희토류 수출 제한 나설 수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결국 유럽에 판매하는 천연가스 대금을 루블화로만 결제받는 대통령령에 서명하면서 본격적인 에너지 무기화에 나섰다. 이런 가운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러시아의 에너지 위협에 맞서기 위해 전략비축유의 역대급 방출 결정을 내리는 한편 국방물자생산법(DPA) 적용을 통한 에너지 자립을 선언하고 나섰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불거진 미·러 간 신냉전이 에너지 패권 전쟁으로 비화하면서 글로벌 에너지 지정학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3월 31일(현지 시간)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에 따르면 이날 푸틴 대통령은 4월 1일부터 비우호국 구매자들이 러시아 가스 구매 대금을 루블화로 결제하도록 하는 내용의 대통령령에 최종 서명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푸틴이 유럽에 ‘루블이 아니라면 가스도 없다’는 최후통첩을 보냈다”고 전했다.



푸틴 대통령의 이 같은 결정에 대해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본격적인 ‘자원 무기화’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세계 최대 천연가스 수출국인 러시아가 유럽 국가들의 높은 의존도를 인질로 삼아 자국에 대한 경제 제재 무력화에 나섰다는 것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러시아의 가스 수출량은 1992억 2800만 ㎥로 2위인 미국(1495억 3800만 ㎥)을 크게 앞서며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러시아산 천연가스의 주요 수입국은 유럽 국가들로 유럽은 전체 천연가스의 40%가량을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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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러시아가 루블화 결제를 요구하며 유럽행 가스를 전면 차단할 경우 유럽 경제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는 것은 물론 글로벌 에너지 시장도 크게 교란시키게 된다. 국내총생산(GDP)의 30%를 에너지 판매 수익에 의존하는 러시아 역시 막대한 경제 손실을 감수해야 하지만 루블화 결제를 관철시키면 자국 손실은 피하면서도 서방 제재를 우회하고 원유 결제를 독점해온 ‘페트로 달러’의 지위를 흔들 수 있다는 것이 푸틴의 노림수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원유와 천연가스 가격의 동반 급등이 세계경제에 1970년대 오일 쇼크와 유사한 ‘쇼크’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여기에 우크라이나 전쟁이 촉발한 신냉전 구도 속에 중국 또한 자원 무기화의 고삐를 죌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러시아산 천연가스 의존을 낮춰야 하는 유럽 국가들이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서두르겠지만 발전설비나 전기차 등은 중국에 의존하는 희토류를 필요로 한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의 우방인 중국이 희토류 수출을 제한할 경우 글로벌 에너지 위기는 더욱 증폭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자원 시장이 신냉전의 새로운 전장이 될 가능성이 고조되자 바이든 대통령도 에너지 자립 계획을 밝히며 맞대응에 나섰다. 이날 백악관은 성명을 통해 “미국은 세계 최대 산유국이자 에너지 수출국이지만 지구 반 바퀴 떨어진 곳에 있는 독재자의 행동이 여전히 미국인 가정의 재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청정에너지로의 전환을 통한 진정한 에너지 자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유가와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한 상황에서 러시아의 에너지 무기화에 휩쓸리기보다는 근본적인 에너지 자립을 달성하겠다는 설명이다.

그 일환으로 바이든 대통령은 리튬과 니켈·코발트·흑연·망간 등 대용량 배터리에 사용되는 광물의 생산 등에 DPA를 적용하기로 했다. 청정에너지의 동력이자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 광물의 자체 생산을 통해 다가올 위기에 대비하겠다는 것이다. DPA는 대통령이 국가 안보를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한 물품을 생산 기업의 손실 발생 여부와 무관하게 우선 조달할 수 있도록 한 법으로 니켈 등에 이를 적용하는 것은 에너지를 국가 안보와 직결시킨 것으로 해석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에도 주요 광물의 공급망 확보와 관련한 가상 회의에서 “미국이 리튬과 코발트, 희토류 공급에서 중국과 캐나다 등 다른 나라에 뒤처져 있다”며 미국 유일의 희토류 가공 처리 업체인 MP머티리얼즈에 3500만 달러를 지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유럽도 에너지 자립 계획을 선포한 상태다. 앞서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유럽을 2030년 이전에 러시아산 화석연료로부터 독립시키겠다”며 가스 공급원의 다양화와 재생 가능 에너지 확대 등을 통해 올해 말까지 EU의 러시아 가스 수요를 3분의 2까지 줄이겠다고 밝혔다. 영국도 올해 말까지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단계적으로 중단하겠다고 밝혔고 독일은 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 확대 방침을 밝혔다. 프랑스는 2050년까지 최대 14기의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을 발표하며 원전을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김연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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