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낸 국내 진출 외국계 증권사들이 이익 대부분을 해외 본사로 보냈다. 돈은 한국에서 벌고 배당 잔치는 본국에서 한 것이다. 특히 증시 호황 속에서 외국계 증권사들은 크래프톤 등 굵직한 ‘기업공개(IPO)’ 상장 주관사를 맡으면서 목돈을 챙겨갔다.
8일 금융투자협회 공시에 따르면 JP모간증권·크레디트스위스증권·씨티글로벌마켓증권·BNP파리바증권 등 주요 외국계 증권사들이 지난해 국내시장에서 번 당기순이익 대부분을 배당금으로 책정했다. 이 중 JP모간증권과 크레디트스위스증권은 해외 본사 송금을 결정했다. 나머지 외국계 증권사들도 같은 수순을 밟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 해 순이익 기준으로 가장 많은 배당금을 해외 본사로 보낸 건 JP모간증권이다. JP모간증권은 지난해 국내시장에서 순이익 1595억 7204만 원을 기록했다. 1995년 서울 지점 인가 이후 최대 실적이다. 전년인 2020년(996억 5887만 원) 대비 60%나 더 번 셈이다. 이 중 JP모간증권은 1595억 원을 배당금으로 책정한 후 지난달 29일 전액 본사로 송금했다. JP모간증권은 2020년에도 국내에서 벌어들인 순이익의 대부분인 996억 원을 본사로 송금했다.
크레디트스위스증권은 지난해 순이익보다 더 많은 금액을 본사에 보낼 배당금으로 책정했다. 크레디트스위스증권은 지난해 순이익 1225억 6175만 원을 기록했다. 전년인 2020년 순이익 855억 9371만 원 대비 43.2%나 늘었다. 2021년에는 배당을 하지 않았던 크레디트스위스증권은 대폭 개선된 실적을 발판 삼아 2021년과 2020년 순이익 중 각각 1000억 원, 650억 원을 배당금으로 책정했다. 이 중 1000억 원은 이달 중 본점으로 송금하기로 결정했다. 다른 곳도 비슷하다. 씨티글로벌마켓증권은 지난해 순이익 546억 원 중 540억 원을 배당금으로 책정했고 BNP파리바증권은 순이익 23만 원을 내고 배당은 이보다 큰 3386만 원으로 결정했다.
외국계 증권사들은 국내시장에서 IPO, 블록딜 주관, 인수합병(M&A) 자문 등으로 수익을 올린다. 특히 지난해 국내 공모 시장은 말 그대로 풍년이었다. 주관 실적이 전무했던 크레디트스위스증권까지 주관에 성공할 정도로 외국계 증권사들도 국내 증권사 못지않게 수수료 수익을 낼 기회가 생겼다. 크레디트스위스증권과 골드만삭스·JP모간증권 등 외국계 3사가 대표 주관이나 공동 주관으로 주식 발행에 참가한 기업 수는 7개사로 공모 총액은 9조 8000억 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카카오페이와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HK이노엔의 상장 주관을 맡은 JP모간증권이 4조 4000억 원 규모의 공모 주관 실적을 달성하며 선두에 섰다. 카카오뱅크와 현대중공업 공모에 공동 대표 주관사로 참여한 크레디트스위스증권은 3조 6000억 원, 카카오페이와 케이카의 공동 대표 주관사인 골드만삭스는 1조 9000억 원의 공모 주관 총액을 기록했다.
이들이 거둔 수수료 수익은 각 IPO당 수십억 원에 달한다. 카카오뱅크의 경우 크레디트스위스증권이 57억 1771만 원, 씨티그룹글로벌마켓증권은 40억 8408만 원을 수수료 수익으로 챙겼다. 크래프톤은 크레디트스위스증권(53억 8736만 원), 씨티그룹글로벌마켓증권(32억 3251만 원), JP모간증권(32억 3251만 원) 등이다. SKIET 공모 주관에서는 JP모간증권이 46억 7157만 원, 크레디트스위스증권이 32억 3416만 원을 수수료 수익으로 가져갔다. 실제 금액은 공모 주관 보너스 등이 더해져 이보다 더 많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국부 유출이라는 지적에도 외국계 증권사의 과도한 배당 문제는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없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국내시장에서 IPO·M&A 등 모든 부문에서 일감이 쏟아지며 외국계 증권사들의 실적이 대폭 개선됐다”며 “그러나 국내 재투자는 이뤄지지 않고 대부분 배당돼 본사로 송금돼 안타깝다”고 말했다.
서종갑·김민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