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경제·마켓

인플레發 신흥국 연쇄위기 오나…WB "1년간 10개국 디폴트 가능성"

[세계경제 퍼펙트 스톰 공포]

■ 스리랑카 일시 디폴트 선언

소비자물가 상승률 18.7% 亞 최고

대외부채 510억달러 상환 중단

페루 등 신흥국들 고물가에 허덕

연준 긴축에 머니무브 가속 우려


스리랑카가 결국 수십조 원대의 채무 상환에 대한 불이행을 선언하면서 경제난에 봉착한 신흥국들이 ‘도미노 디폴트(채무 불이행)’를 맞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전 세계를 뒤덮은 인플레이션이 원자재를 수입에 의존하는 신흥국들에 유독 큰 타격을 입히고 있는 데다 고물가를 잡기 위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고강도 긴축으로 신흥국에서 대거 자금이 이탈할 가능성이 높은 점도 신흥국 ‘연쇄 부도’ 우려를 키우는 요인이다. 앞서 세계은행은 “향후 1년 동안 10여 개 나라가 디폴트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12일 스리랑카의 디폴트는 사실상 예견된 것이었다. 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영향으로 인한 원자재 가격이 폭등하면서 스리랑카는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아시아 국가 가운데 가종 높은 18.7%까지 치솟을 정도로 치명상을 입었다. 여기에 팬데믹과 미국의 금리 인상 영향으로 자금 이탈에 속도가 붙으면서 스리랑카 루피화 가치는 지난 한 달 동안 40%나 곤두박질쳤고 외환 보유액은 같은 기간 16% 감소해 지난달 말 기준 19억 3000만 달러(약 2조 4000억 원)로 쪼그라들었다. 스리랑카가 올해 갚아야 할 대외 부채 규모가 70억 달러(약 8조 6000억 원)에 달하는 점을 감안하면 턱없이 부족한 규모다. 스리랑카의 달러 표시 국채는 대부분 액면가 대비 40% 수준의 헐값에 거래되고 있어 국채 발행을 통한 추가 자금 조달도 여의치 않다. 스리랑카 정부가 이날 디폴트를 선언한 직후 국제통화기금(IMF)과 구제금융 관련 협상에 즉각 돌입하겠다고 밝힌 것은 이 때문이다.



문제는 다른 신흥국들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데 있다. 중동 레바논은 이미 IMF로부터 30억 달러 규모의 구제금융을 받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세계 주요 곡물 수출국인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전쟁에 휩싸이면서 주 식량인 밀 가격이 최대 80% 치솟는 등 물가가 살인적으로 치솟은 영향이 크다. 이집트 역시 물가 급등과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지난달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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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페루의 경우 1990년대 이래 최악의 인플레이션으로 민심이 악화하자 최저임금을 10% 인상하고 생필품과 석유류에 면세 조치를 내리는 등 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백약이 무효한 상황이다.

이처럼 신흥국 각국에서 인플레이션이 경제 위기와 정세 불안을 촉발하는 ‘뇌관’이 되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고물가를 잡을 뾰족한 방책이 없는 실정이다. 금리 인상이라는 카드는 이미 써버린 곳이 많다. 페루 중앙은행은 7일 금리를 0.5%포인트 인상해 4.5%로 조정했다. 이는 페루에서 2009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브라질과 멕시코 등 다른 신흥국들도 지난해 말부터 금리를 연속 수차례 올렸다. 그러나 가파른 금리 인상도 인플레이션을 잠재우기는 역부족이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여기에 올해 총 일곱 차례의 금리 인상이 예상되는 연준의 ‘긴축 드라이브’는 신흥국을 벼랑 끝으로 밀어내고 있다. 실제 2월 우크라이나 개전 이후 한 달 간 신흥국 펀드(주식·채권)에서 유출된 자금은 138억 3000만 달러에 달한다. 허버트 램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애널리스트는 “미국 금리 인상과 달러 강세, 우크라이나 전쟁 속에서 신흥국 채권에서 자금이 이탈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조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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