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이슈 리포트]OECD서 韓·터키만 재정준칙 없어…이대로면 일본꼴 난다

한국형 재정준칙 '발등의 불'

정성호 한국재정정보원 연구위원(한국공공선택학회장)

日 1990년대초 거품경제 붕괴 이후

국채발행 낭비적 지출 확대 '후유증'

총예산 26%나 국채 이자지급에 충당

獨은 헌법개정으로 엄격한 제도 도입

美도 예산지출때 재원조달 방안 포함

제도적 장치로 재정건전성 강화 노력

韓, 2020년 재정준칙안 마련했지만

예외 조건 광범위하고 구속력 느슨

위반시 제재 구체화…실효성 높여야





1960~1980년대 일본 경제는 전성기를 구가했다. 1970년대 두 차례의 석유 위기 상황도 무난히 극복했다. 하지만 1990년대 초 시작된 거품경제가 잃어버린 30년의 전조가 되고 말았다. 바로 일본이 거품경제 붕괴 이후 국채 발행으로 공공지출을 늘린 데 따른 후유증이다. 이용률이 낮은 도로·전시장 또는 복지시설 건설 등 낭비적 지출을 늘려갔다.



일본은 또 이 시기에 우리나라와 유사할 정도의 저출산 고령화 추세가 가속되는 상황에서 사회보장 복지 지출을 늘렸다. 일본의 문제는 국채를 발행해 낭비성 지출은 물론 사회복지 지출도 크게 증가시킨 것이다. 그게 바로 ‘잃어버진 30년’의 불쏘시개로 작용했다.



정치권의 포퓰리즘은 결국 국채 발행이라는 달콤한 유혹에 빠지게 된다. 이 유혹에 매몰돼 실상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달콤함이라는 시한폭탄을 싣고 달리는 폭주 기관차와 다를 바가 없다.

1990년대 일본의 경우 고령화 정책을 추진하면서 조세 저항 직면을 꺼리는 정부와 정치권이 국채 발행을 수단으로 활용했다. 결국 재정 규율 자체가 무너짐은 물론 침체의 늪에 빠지게 됐다. 2022년 일본의 예산 규모는 약 1008조 원이고 이자 지급에 충당하는 국채 비용이 260조 원으로 총예산의 26%에 달한다. 우리나라의 고령화 추세는 일본보다 더 가파르게 진전되고 있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이라는 실패 경로를 그대로 따라가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앞선다. 결단코 이를 답습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국가부채 문제는 단순히 전문가만 고민해야 할 사안이 아니라 전 국민이 함께 고민해 풀어나가야 할 문제인 동시에 윤석열 정부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야 할 사안이다.

대한민국의 국가부채는 문제없는가
정치인들은 부채 규모를 단순 비교해 안정적이라고 평가하기 일쑤다. 그런데 부채의 규모와 양상은 좀 더 자세히 살펴봐야 한다. 개별 국가의 재정과 제도가 분명히 다른데 수치 자료를 단순 비교해 결론을 내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우리나라의 일반정부부채(D2) 945조 원에는 국가채무(D1) 이외에 비영리 공공기관 부채가 100조 원 정도 더 있다는 것이다. 또 공공부문부채(D3) 1280조 원에는 D2 이외에 비금융 공기업 부채가 335조 원 더 숨겨져 있다. 통상 건전재정을 평가하는 준거 기준은 D2다. 이 기준에 비춰보면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건전한 국가에 해당하지만 OECD 국가 대부분은 D2와 D3의 차이가 소폭에 불과하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 차이가 GDP 대비 17.3%나 된다. 원인은 공기업의 방만한 경영, 도덕적 해이 탓도 있지만 정부가 공기업으로 전가한 부채 탓도 크다.



재정준칙을 도입한 유럽연합 국가들의 재정은 건전해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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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EU)은 1996년 12월 더블린 EU 정상회담에서 안정과 성장에 관한 협약(SGP)에 합의했다. 가입국의 재정적자 상한선을 GDP의 3%로 정하는 협약이기도 하다. 하지만 2010년 재정위기를 계기로 EU는 대응 메커니즘이 없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다만 이 같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유럽의 재정준칙은 경기 안정화 및 재정 건전성 확보에 최소한의 장치라는 평가를 받는다. 2005년 EU는 SGP에 중기재정목표(MTO), 구조적 재정수지 개선 등을 보완해 개정하고 2011년 한 차례 더 강화했다. EU는 다양한 제도적 보완 장치로 경기 대응과 재정 건전성 강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국가부채를 잘 관리해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면서 다시 성장 동력을 회복하려면 유럽의 재정준칙 도입 사례를 참고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앞서 독일은 1969년부터 재정준칙을 헌법에 규정한 뒤 2009년 헌법 개정으로 보다 엄격한 제도를 도입했다. 연방정부의 신규 채무를 GDP 대비 0.35%로 줄여야 한다고 규정한 것이다. 결국 독일은 2019년 정부부채 비율을 축소해나가는 데 성공했다. 또 미국은 2010년 ‘페이고’ 원칙을 세워 예산 지출이 필요할 때 반드시 재원 조달 방안을 포함하도록 했다. 다만 일본은 유명무실한 재정준칙으로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200%를 돌파했다.

재정준칙은 무엇인가
재정준칙은 ‘재정에 대한 행정부의 재량권을 제약하는 것으로 재정 총량에 대한 수치적 한도(제한)를 정하는 것’이다. 즉 준칙은 재정수지·재정지출·국가채무 등 총량적 재정지표에 관해 구체적인 목표수치를 부여해 재정 운용 목표를 법제화한 것이다. 재정준칙의 유형은 목표 변수에 따라 채무준칙(DR)·재정수지준칙(BBR)·지출준칙(ER)·수입준칙(RR) 등으로 구분한다. OECD 36개국 중 34개국이 재정준칙을 운영하고 있다. OECD 국가 중 명시적인 재정준칙을 운영하지 않는 국가는 한국과 터키뿐이다. 국제통화기금(IMF) 93개 회원국도 도입했다.


허울뿐인 한국의 재정준칙안

2016년 제출된 우리나라의 재정건전화 법안은 국가채무를 GDP 대비 45% 이하로,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GDP의 3% 이하로 유지한다는 것이었다. 형식은 법률이고 다른 법률에 우선해 적용하도록 규정했다. 다만 제재 조치가 명확하지 않고 예외 조항을 포괄적으로 정의했다는 한계가 있다. 2020년 제출된 한국형 재정준칙은 ‘국가재정법’을 개정해 재정준칙의 근거로 삼고 주요 수치 산식 등은 시행령에 위임해 5년마다 재검토한다는 것이다. 다만 국가채무 비율과 통합재정수지 관리 범위를 각각 GDP 대비 60%와 3%로 제시했다. 한국형 재정준칙을 발표한 직후 ‘맹탕’ ‘고무줄’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준칙 적용 예외 조건이 광범위하고 재정준칙의 구속력이 너무 느슨하다는 지적이었다. 2025년부터 적용하기로 한 시기도 비판의 대상이었다. 이는 2016년 제출된 재정건전화 법안보다 더 후퇴한 재정준칙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재정준칙 대안
재정준칙의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재정준칙은 규율로서 강제성을 띠어 합리적 정책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재정준칙이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선결 조건과 전제 조건이 있다. 우선 선결 조건은 재정준칙 도입과 무관하게 정부가 지속해서 추진해야 할 정책 수단을 의미하며 실제로 재정준칙이 도입된다면 효과성이 배가될 수 있는 수단을 말한다. 이를 위한 조건으로 ‘재정지출과 연계된 경제성장으로 국가부채비율을 상쇄(유지)’하거나 ‘지출 효율화 및 범부처 사업 관리’를 고려해야 한다. 재정지출이 경제성장으로 이어지는 한 적어도 부채비율은 유지(상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지출 효율화는 개별 부처에 초점을 맞출 필요도 있지만 범부처 사업 관리도 중요하다. 지출 효율화는 세출을 조정할지 아니면 세입을 조정할지 등에 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한데 우선 실질적 지출심사(spending review) 도입을 고려해야 한다. 선결 조건 이행 없는 재정준칙 법제화는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아울러 재정이 수반되는 무분별한 제안을 통제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전제 조건은 사전에 체계적 검토가 필요한 사안으로 재정준칙이 실제로 작동될 때 실효성을 높일 수 있는 수단이다.
바로 법제화와 포괄 범위를 ‘일반정부’ 단위로 확장해야 한다. 수치적 한도는 일반정부 부채비율 ‘60%’, 관리재정수지 적자 3%로 설정하고 재정준칙 위반 시 ‘제재’를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또한 예외 조항 판단 시 명확한 준거 기준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예외 조항 평가는 불확정성의 문제로 예외 조항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독립재정위원회 신설을 통해 판단할 필요가 있다.
재정준칙은 확장적 재정 정책 또는 사회복지 지출 등을 통제하는 것으로 연결해 해석하면서 정치적 논쟁을 야기한다. 하지만 이는 오해다. 재정준칙은 확장적 재정 정책을 저지하는 수단이 아니다. 국가부채가 급격히 늘어나면 경제성장을 위한 동력은 줄어들게 된다. 국가부채 증가는 국가 경쟁력을 좀먹고 결국 국가 경제를 파탄에 이르게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어떠한 방식으로든 재정지출에 대한 레드라인을 명확히 해야 한다. 정부가 지속되는 한 지속 가능한 재정 운영은 필수적인 만큼 더 늦기 전에 재정준칙을 구체화해야 한다. 건전 재정은 구호로만 달성되는 것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재정준칙은 한 국가 경제의 명운을 바꿀 수 있는 금과옥조와 같다. 국민의 삶이 달라질 수 있는 문제인 만큼 시급하다.



정성호 연구위원은…연세대에서 행정학(재무행정) 박사 학위를 받은 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을 거쳐 한국재정정보원에서 공공재정·정부재정통계 등에 관한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현재 한국공공선택학회장에 취임했다. 주요 저서로는 ‘대한민국 재정정책 70년사’ ‘인구소멸 한국은 대비하고 있는가’ ‘지방분권 이념과 대립을 넘어’ 등을 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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