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TSMC 증설·인텔 M&A 거센데…시스템 반도체 '1위 전략' 부재

[위기의 삼성-<상> 흔들리는 '반도체 제국']

오너 부재 겪으며 투자 주춤한 새

中, 지난해에만 1026억 달러 베팅

美는 5년간 520억弗 세혜택 추진

日도 TSMC와 손 잡고 공장 지어

"반도체는 투자 적기 놓치면 후퇴

국가 차원 지원없인 경쟁력 상실"





“대통령이 종합 반도체 강국의 비전을 제시하고 ‘메이드 인 코리아’까지 말할 때 무거운 책임을 느꼈습니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를 포함한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도 확실히 1등을 하겠습니다. 굳은 의지와 열정·끈기를 갖고 꼭 해내겠습니다.”



2019년 4월 30일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부회장이 삼성전자 경기 화성사업장을 찾은 문재인 대통령 앞에서 다짐한 말이다. 시스템반도체는 삼성전자가 30년째 세계 1위 자리를 유지 중인 메모리반도체 시장보다 1.5배 더 큰 거대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D램 등 메모리반도체와 달리 경기변동 영향이 적고 수익성은 높아 성장 잠재력이 큰 산업으로 꼽힌다.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 삼성전자의 포부가 현실화되기는 만만찮게 됐다는 게 대다수의 시각이다. 반도체 업계 사정을 잘 아는 재계 인사들은 삼성전자가 외려 그새 글로벌 시장에서 수세에 몰렸다고 입을 모은다. 171조 원 규모로 광범위하게 진행되던 삼성전자의 투자 행보는 지난해 1월 이 부회장 재수감 이후 추진력이 상당 부분 떨어졌다. 삼성전자는 당시 이 부회장의 지휘 아래 2020년 2월 파운드리를 맡는 화성 V1 라인을 본격 가동하고 5월 평택 사업장에 극자외선(EUV) 전용 파운드리 생산 라인 공사에 돌입했지만 이후 투자는 그 정도의 속도를 못내고 있다.




현재 삼성의 5나노미터 이하 공정 수율도 목표치에는 다소 못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만 TSMC를 넘어설 수준은 아니라는 게 해외 언론들의 대체적 평가다. 엔비디아가 발주한 데이터센터용·소비자용 그래픽처리장치(GPU) 사업도 TSMC가 최근 수주했다는 설이 돈다. 삼성은 파운드리 4나노미터 공정으로 만든 엑시노스 2200 대신 스마트폰 갤럭시S22에 퀄컴의 스냅드래곤8을 장착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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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수가 수감, 취업 제한 등으로 발목을 잡힌 사이 눈에 띄는 인수합병(M&A)도 실종됐다. 한종희 삼성전자 DX(디바이스경험) 부문장(부회장)은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부품과 완제품 모두에서 M&A 가능성을 크게 열어 놓고 있다. 조만간 좋은 소식이 나올 것”이라며 기대를 높였지만, 지난달 16일 주주총회에서는 “대내외 불확실한 상황 등으로 인해 M&A를 특정하기 어렵다”며 신중한 자세를 취했다.

반면 글로벌 경쟁사들의 도전은 거세다. 이미 파운드리 분야에서 글로벌 시장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TSMC는 5나노미터 생산을 위해 2024년까지 미국 애리조나주에 반도체 생산 공장 5개를 추가로 짓고 있다. 여기에 인텔까지 파운드리 사업에 뛰어들며 관련 시장 경쟁 구도는 2파전에서 3파전으로 재편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인텔은 올 2월 이스라엘 반도체 파운드리 기업 ‘타워세미컨덕터’를 54억 달러(약 6조 5000억 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김양재 다올투자증권 연구원은 “TSMC와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이에 기술·설비투자 격차가 더욱 확대되고 있다”며 “인텔의 진입으로도 위협받는 상황이라 중장기 전략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분석했다.

최근 반도체 시장이 기업 간 경쟁을 넘어 국가 대항전 성격으로 나아가는 흐름도 삼성전자를 더욱 곤혹스럽게 만드는 지점이다. ‘반도체 굴기’를 선언한 중국은 최근 수년간 국가적 지원 속에 반도체 생산 장비 구입 투자를 대폭 늘리고 있다. 지난해에는 투자액이 1026억 달러로 한국(249억 8000만 달러)의 4배를 넘었다. 미국 연방의회 상원은 5년간 총 520억 달러(약 58조 5000억 원)의 반도체 지원 예산을 확보하고 세제 혜택을 주는 법안을 지난해 6월 통과시켰다. 일본 소니는 TSMC와 손잡고 일본 구마모토현에 반도체 생산 공장을 건설한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M&A에는 큰 결단이 필요한데 삼성전자를 이 부회장 외에 전문경영인에게 맡겨서는 의사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며 “TSMC에는 대만 최고의 인재들이 몰리는데 한국 반도체 업계에는 고급 인력이 부족하다는 점도 정부가 반드시 해소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파운드리 분야는 삼성전자가 TSMC를 따라가기만 하는 형국”이라며 “반도체는 적기에 투자를 하느냐가 핵심인데 정부가 인허가와 전력·용수·토지 등 인프라 지원을 잘 해줘야 한다”고 제언했다.


윤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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