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동향

[기고] 식량은 경제가 아니라 안보다

■김춘진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사장

우크라 사태 후 곡물값 치솟는데

韓 밀·콩 등 자급률 크게 떨어져

각국 비축량 확보로 식량정책 전환

돈 있어도 식량 못사는 시대 대비를





우크라이나 국기를 이루는 파란색과 노란색은 각각 파란 하늘과 노란 밀밭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만큼 우크라이나는 밀 생산과 떼어놓을 수 없는 나라다. 2월 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제 선물 시장에서 밀 가격은 가파르게 상승했다. 밀 선물 가격은 1년 전과 비교해 2배 가까이 치솟았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많이 수출하는 옥수수 선물 가격도 9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전쟁이 올해 말까지, 혹은 몇 년간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애그플레이션 우려도 커지고 있다. 데이비드 맬패스 세계은행 총재는 최근 “새로운 글로벌 식량 위기가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밀 수입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도 우크라이나 사태의 영향을 받고 있다. 3월 수입 밀 가격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0% 넘게 상승하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톤당 400달러를 넘어섰다. 밀은 우리 국민들에게 쌀에 이은 제2의 주요 식량으로 2020년 기준 국민 1인당 연간 밀 소비량은 31.2㎏이다. 1인당 쌀 소비량인 57.7㎏의 절반이 넘으며 평균 하루에 한 끼 정도는 밀을 섭취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밀 자급률은 0.8%에 불과하다. 대표적인 밀 수입국이자 한때는 우리보다 자급률이 낮았던 일본(27%)과 비교해도 크게 떨어진다. 밀보다는 높지만 옥수수 자급률은 3.6%, 콩 자급률도 30.4% 수준이다.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이 절반을 밑도는 45.8%에 그친 것은 4대 곡물로 꼽히는 쌀·밀·콩·옥수수 중 쌀을 제외한 나머지 곡물의 수입의존도가 지나치게 높기 때문이다. 국민들의 식생활 변화 등 여러 원인이 있으나 심각한 수준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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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생산 기반을 다지는 동시에 안정적인 해외 도입 여건을 마련해야 하는데 단기적으로 이뤄지기는 매우 어렵다. 특히 온실가스 배출 증가로 세계적으로 태풍과 폭염·집중호우 등 이상기후 현상이 늘고 농업생산성이 하락하는 최근에는 더욱 그렇다. 코로나19 같은 전염병이나 전쟁 발발에 따른 식량 수출 제한, 봉쇄 조치도 실제로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일이다. 세계 각국이 ‘재고량 감축’에서 ‘비축량 확보’로 식량 정책의 방향을 전환하는 이유다. 중국은 주요 식량에 대해 중앙정부가 1년 소비량을 보유하고 있으며 지방정부는 주산지에서 3개월, 주소비지에서는 6개월 이상의 소비량을 비축하고 있다. 일본은 밀 2.3개월분, 사료 곡물 1개월분을 의무적으로 비축하며 쌀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는 싱가포르도 수입 물량의 2배를 상시 비축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지속적으로 공공 비축량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2025년까지 밀은 3만 톤, 콩은 6만 톤 비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앞으로는 늘어나는 공공 비축 식량의 품질을 잘 유지하기 위한 체계적 관리 방안, 그리고 자체 저장 시설과 가공 시설이 부족한 곡물 관련 업체들을 위한 지원 방안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국내 생산 물량은 물론 해외 수입 물량까지 한 곳에서 저장·가공할 수 있는 복합 단지를 조성한다면 식량 위기 상황에 대한 대응력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영국 시사 언론인 이코노미스트 산하 이코노미스트임팩트가 집계한 ‘2021 세계식량안보지수(GFSI)’에서 우리나라는 32위를 기록했다. 세계 10위 경제 강국으로 성장하는 동안 농업이 지나치게 소외된 결과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국내산 농산물은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다’ ‘부족하면 수입해서 먹으면 된다’는 시장만능주의로는 식량 위기에 대응할 수 없다. 식량은 경제 문제가 아니라 안보 문제다. 안보에 경제성을 따질 수는 없다. 돈이 있어도 식량을 살 수 없는 식량 위기 시대의 경고음이 이미 울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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