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에서는 삼성전자(005930)가 이재용 부회장의 사법 리스크를 극복해 공격 경영 행보를 다시 이어가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 부회장이 수감, 취업 제한, 재판 출석, 검찰 수사 등으로 잇따라 발목이 잡히면서 삼성전자는 대형 인수합병(M&A), 신수종 사업 발굴 등 미래 대비에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2017년 3월 전장 기업인 하만을 인수한 이후 글로벌 M&A 시장에서 아무런 존재감을 보이지 않고 있다. 올 2월 이스라엘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기업 ‘타워세미컨덕터’를 인수한 인텔, 최근까지 세계적 반도체 설계 기업(팹리스) 암(ARM) 매수를 저울질한 엔비디아, 2024년까지 미국 애리조나주에 반도체 생산 공장 5개를 추가로 짓는 TSMC 등 경쟁사들과는 구분되는 행보다.
1983년 반도체 사업 진출, 1993년 신경영 선언, 2008년 스마트폰 사업 진출, 2010년 바이오 사업 진출 등 한국 산업계를 주도했던 굵직한 경영 혁신도 12년째 제자리걸음만 걷고 있다. 투자 적기를 하염없이 놓친 탓이었다.
그사이 삼성전자 내부에는 현금만 잔뜩 쌓였다. 지난해 삼성전자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회사의 현금성 자산은 120조 7812억 원에 달한다. 2017년 말 83조 1842억 원이었던 현금성 자산은 4년 만에 무려 37조 원이나 더 늘었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8월 가석방 이후에도 사법 족쇄가 풀어지지 않아 잠행만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12월 문재인 대통령 초청으로 청와대를 방문한 것을 끝으로 공식 경영 활동을 완전히 멈췄다. 해외 출장, 국내 기업인 만남 등은 없이 삼성물산(028260)·제일모직 부당 합병 의혹 재판만 매주 출석하고 있다.
한국 경제를 이끌어야 할 삼성전자가 부진에 빠지자 여론도 이 부회장 사면에 힘을 싣고 있다. 지난해 12월 18~19일 피플네트웍스리서치(PNR)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1.5%는 이 부회장 사면에 찬성한다고 응답했다. 사면에 반대한 응답은 30.1%로 이보다 한참 적었다. 사면 찬성 여론에는 대구·경북(65.1%), 호남(60.7) 등 지역별 차이도 크지 않았다. 지난해 8월 경영학자들로 구성된 한국경영학회가 회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응답자의 67.2%가 이 부회장 사면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삼성전자는 시스템반도체 세계 1위를 천명하고도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며 “선제적 전략, 확고한 투자가 없다 보니 TSMC와의 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다”고 걱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