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문 정국이 시작부터 파행을 겪고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는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의 ‘보이콧’으로 중단됐고 교육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는 일정조차 논의되지 못한 상태다. 이대로라면 윤석열 정부 출범 전에 청문회를 끝마치는 것도 어려울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국회 인사청문특별위원회는 25일 국회에서 한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개최했지만 39분 만에 정회했다. 한 후보자가 인사 검증을 위해 필요한 자료를 제대로 제출하지 않았다면서 민주당과 정의당이 청문회에 불참한 탓이다.
한 후보자에게 제기된 의혹은 전관 예우, 이해 충돌, 배우자 재산 증식 등과 연관이 있다. 한 후보자가 공직에서 물러난 뒤 법무법인 김앤장에서 근무한 것이 이해 충돌 소지가 있다는 의혹과 함께 이때 받은 고문료 18억 원의 성격, 그리고 부인의 재산이 10년 새 12억 원가량 늘어난 과정 등이 주요 쟁점이다.
민주당과 정의당은 한 후보자가 이 같은 의혹에 대한 자료 제출 요구에 △개인 정보 제공 미동의 △사생활 침해 우려 △서류 보존 기간 만료 △영업상 비밀 등의 이유를 들며 국회에 위임된 고위 공직자 검증 권한을 유명무실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민주당·정의당 소속 인청특위 위원을 대표해 홀로 청문회장에 참석한 강병원 의원(민주당 간사)은 의사 진행 발언을 통해 “민주당과 정의당이 한 후보자의 자료 제출 미비를 이유로 일정 재조정을 요청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고 강행해 유감”이라며 “부동산 계약서를 달라고 했는데 찾을 수 없다기에 한국부동산원 매매 현황을 요청했더니 개인 정보 제공 미동의로 어렵다고 한다. 어떤 의혹이 있기에 개인 정보 제공에 동의하지 않느냐”고 따져 물었다.
강 의원은 또 “한 후보자가 일하며 20억 원을 받은 로펌은 어떤 일을 했는지 문의하니 영업 비밀이어서 알려줄 수 없다고 한다”며 “한 후보자가 해명한 대로 국익을 위해 일한 것이면 자랑할 일인데 왜 제출하지 못하느냐”고 날을 세웠다. 그러면서 “이런 허술 청문회, 맹탕 청문회는 도리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국민의힘은 이에 대해 민주당과 정의당의 자료 제출 요구가 과하다고 반박했다. 문재인 정부에서의 세 총리(이낙연·정세균·김부겸) 후보자 인사청문회에 비하면 한 후보자의 자료 제출이 부실하지 않다는 것이다.
인청특위 국민의힘 간사인 성일종 의원은 “민주당은 30~40년 전 돌아가신 한 후보자의 부모 부동산 거래 내역을 요청하고 있다”며 “한 후보자가 1989년 매입한 주택인데 33년 전 계약서를 누가 가지고 있느냐”고 반문했다. 김미애 의원도 “한 후보자에 대한 자료 요청은 무려 1090건에 달한다”며 “인사청문회법에 따르면 인사청문 동의안이 국회에 제출된 후 20일 이내에 청문회를 마쳐야 한다. 따라서 27일 전에 청문회가 마무리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야가 강 대 강 대치를 이어가자 주호영 인청특위 위원장은 간사 간 합의를 위해 정회를 선언했다.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된 여야 간사 회동에서도 서로의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하면서 결국 후보자 선서조차 하지 못한 채 오후 4시 45분쯤 산회했다. 인청특위는 26일 오전 10시 한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를 다시 진행한다는 계획이지만 한 후보자 측이 민주당에 자료를 제출하더라도 분석 등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여 정상적인 진행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청문 일정이 삐걱대는 곳은 총리뿐만 아니다. 김인철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일정 등은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런 추세면 총리 이외 18명의 장관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를 윤석열 정부 출범 이전에 끝낼 수 있을지 미지수다. 자칫 문재인 정부의 장관들과 정부를 운영해야 할 수도 있다.
국민의힘의 한 관계자는 “아무리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다고 하지만 정권 출범마저 훼방을 놓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면서 “170석이 넘는 의석을 무기로 한 민주당의 근육 자랑에 속수무책”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여야는 다음 달 4일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를 개최하기로 합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