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이 배터리 장비 생산에 나선다. 동박·분리막 등 주요 소재와 배터리 셀은 물론 장비까지 생산하며 배터리 밸류체인을 완성하기 위한 행보로 분석된다. 이와 함께 SK그룹은 전력 반도체 제조사를 인수하며 반도체 분야 밸류체인도 확대하고 있다. 그룹 내 투자 전문 지주사인 SK㈜를 중심으로 전기차 관련 사업이 강화되는 모습이다.
3일 업계에 따르면 SK그룹 산하 전기차 충전기 전문 제조사인 SK시그넷은 배터리 장비를 신사업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SK는 지난해 시그넷이브이의 지분 55.5%를 2930억 원에 인수했고 올해 3월 시그넷이브이는 사명을 SK시그넷으로 바꿨다. 전기차용 충전기 분야에서 세계 2위 사업자인 SK시그넷은 SK㈜ 투자센터장 출신 신정호 씨를 대표이사로 선임하며 신성장 동력을 발굴하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
배터리 장비는 SK시그넷이 새로 추진하는 신성장 분야의 일환이다. 기존에 전기차용 초급속 충전기를 제조해온 만큼 배터리 충·방전 공정 등에 필요한 장비도 개발할 역량이 있다는 판단에서다. 국내 배터리 셀 업체들이 해외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생산능력 증설에 나서고 있어 배터리 장비 수요가 커지고 있다는 점도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배터리 셀을 양산하는 SK온은 SK시그넷으로부터 배터리 장비를 공급 받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SK시그넷이 배터리 장비 시장에 진출함에 따라 SK그룹은 소재·셀·장비를 아우르면서 배터리 밸류체인을 확장하게 됐다. SK㈜는 양극재와 음극재 양산을 추진하고 있으며 세계 1위 동박 생산 업체인 SKC도 실리콘 음극재 생산을 준비하고 있다. SK아이이테크놀로지는 글로벌 프리미엄 분리막 시장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이와 함께 SK그룹의 반도체 밸류체인도 강화되고 있다. SK㈜는 지난달 국내 유일 실리콘카바이드(SiC) 전력 반도체 설계·제조사 예스파워테크닉스를 인수하며 전력 반도체 사업을 강화했다. 전력 반도체는 전기차, 전자 제품, 5세대(5G) 통신망 등에서 전류 방향과 전력 변환을 제어하는 데 쓰이는 필수 반도체다. 특히 전기차 에너지 효율을 7%가량 개선할 수 있어 전기차의 핵심 부품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SiC 웨이퍼 생산사인 SK실트론을 자회사로 둔 SK㈜는 이번 인수를 통해 국내 최초로 SiC 전력 반도체 소재인 웨이퍼 생산부터 SiC 전력 반도체 설계, 제조까지 이르는 밸류체인을 구축하게 됐다. 앞으로 SK㈜는 SiC 전력 반도체의 전 세계적인 양산 체제를 갖추고 글로벌 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SiC에 기반한 질화갈륨 반도체 등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라인을 확장해 나간다는 전략이다.
이처럼 전기차 분야를 중심으로 SK그룹 내 시너지가 더욱 강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장동현 SK㈜ 부회장이 SK온·SK아이이테크놀로지 등을 자회사로 둔 SK이노베이션의 신임 기타비상무이사로 선임되며 이사회에 합류했기 때문이다. 장 부회장은 과거 SK머티리얼즈·SK㈜ 합병 등 그룹 내 모빌리티 사업의 큰 그림을 짜는 작업을 주도해왔다. 그룹이 갖춘 반도체·배터리, 정보통신기술(ICT) 역량을 총동원해 자율주행 시대에도 대비하겠다는 구상이다. 재계 관계자는 “SK그룹이 친환경 전략을 가속화하기 위해 배터리·반도체 등 전 분야를 아우르는 밸류체인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