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생활

[여명] 닫힌 정권과 그 적들

■ 박태준 문화부장

5년여 전쟁 후 몰락한 나치당

전선 넓혔던 국내 정권과 오버랩

이성 잃은 권력 입법 폭주 불사

진영 정치의 최후 반면교사 되길






#(1945년 4월 20일, 아돌프 히틀러의 쉰여섯 번째 생일, 베를린) 소련군의 야포 사격이 브란덴브르크 문과 국회의사당 근처에 떨어졌다. 소련군이 시내 중심부 12㎞ 앞까지 진격했다.

#(베를린 나치당 사령부 지하 벙커 회의실) 사령부 참모 알프레트 요들 장군 “제9군이 후퇴하지 않으면 큰 손실을 입을 겁니다.”

히틀러 “후퇴는 안 돼. 현 위치를 지켜야 해. 아군이 북동쪽의 소련군을 밀어낼 거야. 무자비하고 강력한 공력을 펼쳐서….”

요들 “어떤 병력이 말입니까?”

히틀러 “슈타이너가 북쪽에서 밀고 내려와 9군과 합류할 거야. 벤크의 12군이 반드시 지원해줘야 해.”



#(회의실 밖 복도) 요들 “총통은 이성을 잃었어. 슈타이너 군대는 완전히 박살났는데 반드시 공격한다고? 미친….” (영화 다운폴,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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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후 4월 30일 히틀러는 약혼녀 에바 브라운과 결혼식을 마친 뒤 그녀와 함께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히틀러가 이성을 잃었다고 투덜댔던 알프레트 요들이 5월 7일 연합군에 항복하면서 제국은 몰락했다.

그럼 시계를 5년여 전으로 돌려보자. 두 번째 세계대전을 일으킬 무렵 독일에 대적할 국가는 없어 보였다. 1939년 9월 1일 폴란드를 침공한 독일은 이듬해 노르웨이와 덴마크·벨기에를 파죽지세로 점령한 후 프랑스까지 손아귀에 넣었다. 1940년 5월 말 프랑스 됭케르크에서 연합군이 쫓기듯 철수할 때 독일의 유럽 정복은 현실이 되는 듯했다. 1941년 6월 불가침조약을 깨고 소련을 침공하기 전까지는.

독소전쟁을 일으키며 독일은 결국 전선을 동부로 넓혔다. 영국이 여전히 건재한 상황에서 무모한 전쟁이었지만 독일군 참모본부는 10주간의 작전으로 모스크바를 점령할 수 있다는 ‘로스부르크 연구’를 내놓았다. 이를 승인한 히틀러는 침공 전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가 문을 박차고 들어가기만 하면 저 엉터리 건물은 스스로 무너진다.”

참혹한 전쟁을 일으킨 나치당과 독일의 흥망이 5년 기한의 국내 정권과 오버랩된다. 정권 초기 기세는 등등했다. 전선을 넓혀 적들을 만들어내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문재인 정권 5년간 부동산 시장의 적은 다주택자였고 일자리·임금 정책에서는 대기업과 자영업자들이 그 역할을 했다. 원전 옹호론자들 역시 척결해야 할 적이었고 언론과 사법부, 특히 검찰은 그냥 둬서는 안 되는 주적이었다. 그리고 내 편에 맞서는 저편 모두가 적이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그랬듯 무리하게 전선을 넓혀 너무 많은 적들과 대치했다. 그중에는 현 정권의 검찰총장도 있었고, 그가 야당의 후보가 돼 차기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20년 장기 집권을 장담했던 여당은 그렇게 5년 만에 정권을 내줬다. 그리고 이성을 잃었다.

불안한 여당은 검찰에 수사권을 남겨 놓을 수 없다며 입법 폭주를 서슴지 않았다. 대통령은 퇴임 6일 전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을 모두 의결했다. 앞서 그는 신구 권력의 충돌로 나라가 시끄럽던 와중에 “적어도 우리와 비슷한 수준의 나라에선 우리나라의 부동산 값 상승 폭이 가장 작은 편에 속한다”는 말로 마지막 대담을 장식했다.

이제 나흘이 지나면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다. 문 정부의 여정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본 그리고 어쩌다 새로운 정부의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그의 마음가짐은 어떠할까. 적어도 ‘진영 정치’와 ‘내로남불’이 어떻게 적들을 키워내는지, 그 적들이 어떻게 부메랑이 되는지 가슴에 새기고 있지 않을까. 취임 후 직무 수행에 대한 긍정 평가(42%)가 역대 가장 낮은 당선인(부정 평가 45%·4월 넷째 주 갤럽 조사)이기에 더욱 그래야 하지 않을까.

나치당이 몰락했던 1945년 칼 포퍼는 ‘열린사회와 그 적들’에서 전체주의의 야만성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가 2022년의 대한민국 정권을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해지는 5월이다.


박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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