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4년간 권력자와 통치자의 공간이던 청와대는 고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왕의 별궁인 남궁이 있던 곳이고 조선 시대에는 경복궁의 후원이었으며 일제 강점기 때는 조선총독부의 공원이었다. 일본이 떠난 후 총독 관저는 미군정의 관저로 쓰였고 1948년에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의 이승만 대통령이 사용하면서 ‘대통령의 공간’이 됐다. 역사가 켜켜이 쌓인 곳인 만큼 구석구석에 문화 유적이 흩어져 있다.
10일 활짝 열린 청와대 정문에서 마주 보이는 본관은 1991년 완공됐다. 머릿돌에 노태우 전 대통령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본관을 보고 섰을 때 오른쪽에 무궁화와 배롱나무·참꽃나무가 자리 잡았고 왼쪽에는 무궁화와 모과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있다. 사자 두 마리가 떠받든 석등, 발가락이 5개인 용 무늬의 국기 게양대가 있으며 입구 양쪽에는 궁궐 방화수를 담던 ‘드므’라는 대형 항아리가 각각 놓여 있다.
본관 왼편 영빈관 쪽에는 한 해의 풍년을 기원하던 ‘경농재’ 자리가 있다. 1893년에 고종이 조성한 곳인데 조선의 전국 8도를 상징해 논밭을 8구역으로 나눠 놓았던 곳이지만 1939년 총독부 관저 건립 때 없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 청와대 본관 자리는 지금 건물의 조금 오른쪽에 위치했다. ‘구 본관 터’임을 알려주는 지석이 대통령 관저로 향하는 길에 자리 잡고 있다. 고종이 융문당과 융무당을 조성했던 경무대 터가 바로 이곳이다. 경복궁 신무문 밖을 지키던 군사 건물인 ‘수궁’ 자리이기도 하다. ‘천하제일복지’라는 명당 터임을 알고 일제가 건물을 지었던 것인데 1993년 철거 이후 ‘경무대 터’ 혹은 ‘구 본관’으로 불린다. 돌로 만든 ‘절병통’이 이곳 잔디밭에 놓여 있는데 구 본관 현관 기와지붕에 올렸던 장식을 그 자리에 남겨둔 것으로 유일한 옛 흔적이다.
조금 위 안쪽이 대통령의 관저다. 관저는 12칸과 10칸의 한옥이 ㄱ자 모양으로 조성돼 있다. 별채를 둔 널찍한 잔디 마당 너머로 서울 시내 전체를 내려다 볼 수 있다. 관저 옆으로 조성된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면 고종 때의 전각인 ‘오운정(서울시 유형문화재)’을 만날 수 있다. 자연의 풍광이 신선 세계 같다고 해 오색구름을 뜻하는 이름이 붙었다. 원래는 조금 아래쪽에 있었지만 1989년에 관저 위쪽으로 이전됐다. 오운정과 비슷한 때 조성된 ‘침류각’도 운치를 더한다. 청와대 경내 관람 코스 중 가장 위쪽에 자리 잡은 석조여래좌상(보물)은 ‘미남불’이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석굴암 본존불을 계승해 9세기에 조성된 경주의 불상이었으나 일제 강점기 때 총독 관저로 옮겨진 것이 1912년 총독부박물관을 거쳐 지금의 위치로 옮겨온 수난의 역사를 안고 있다.
국민 모두의 것이 된 청와대의 구체적 활용 방안은 아직 논의 중이다. 문화계와 학계 전문가들은 역사적 의미를 살린 공간이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미국 필라델피아에는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의 집무 공간, 벤저민 프랭클린의 생가 터, 미국 독립선언이 울려 퍼진 독립기념관 등을 묶어 조성한 ‘독립역사공원’이 있다. 문화재위원회 근대분과위원장인 윤인석 성균관대 건축학과 명예교수는 “경복궁 후원으로서의 역사성을 드러내면서 20세기의 청와대 건물들까지 아우르는 역사문화공원 조성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