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금융 소비자 권익 향상을 위해 금융감독원의 분쟁조정제도 개편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개편의 골자는 분쟁조정위원회의 독립성을 강화하고 금융 분쟁의 처리 기간을 단축하는 것이다. 금융소비자보호법 시행 첫해인 지난해 금융 분쟁 민원 접수 건수는 소폭 줄었음에도 평균 처리 기간은 되레 늘어나 금융 소비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22일 국회 정무위원회와 금감원 등에 따르면 지난해 금융 분쟁 평균 처리 기간은 93.3일로 집계됐다. 평균 처리 기간은 2017년만 해도 24.4일에 그쳤으나 △2018년 34.3일 △2019년 48.1일 △2020년 58.7일로 해마다 길어지더니 지난해 결국 90일을 넘겼다. 금감원은 금융 분쟁 신청을 받은 날부터 30일 이내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때는 지체 없이 분조위에 회부해야 하고 분조위는 이를 심의해 조정안을 60일 내에 작성해야 한다는 규정도 지켜지지 않은 셈이다.
일 처리가 지체되는 것은 금융 분쟁 민원이 폭증하고 있는 데다 금융회사와 금융 소비자 간 이견이 날이 갈수록 첨예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정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금융 상품의 구조와 판매 단계가 복잡해짐에 따라 금융 사고 및 금융 분쟁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나 이를 담당하는 금감원은 인력의 한계 등으로 신속하게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2017년 2만 5205건에 불과하던 금융 분쟁 민원은 2020년 3만 2130건까지 늘었다. 이후 금소법이 시행된 지난해 3만 495건으로 전년보다 다소 줄었으나 여전히 3만 건을 웃돌았다. 특히 2020년과 2021년 연달아 터진 라임·옵티머스 등의 사모펀드 사태와 머지포인트 사태로 금융 분쟁이 급증했다. 전직 금감원 고위 임원은 “키코(KIKO),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등을 거치면서 (금융) 소비자 보호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 (과도기적) 결과”라고 말했다.
금감원 역시 분쟁 조정 전담 부서를 2곳에서 3곳으로 늘리고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을 증원했지만 금융 소비자들의 불만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앞서 금감원은 지난해 1월 조직 개편 및 부서장 인사에서 분쟁 조정 전담 부서를 2곳에서 3곳으로 늘린 바 있다. 현재 금감원은 302명의 인력(정원 기준)을 분쟁 처리 및 분조위 운영에 투입하고 있다. 조연행 금융소비자연맹 회장은 “금감원이 루나·테라와 같은 코인이나 암호화폐(가상 자산)거래소 관련 분쟁도 방치를 하고 있는데 유사 금융을 포함해 폭넓은 영역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금융 분쟁 민원이 분조위에 회부되는 사례도 극히 적다. 지난해 제기된 금융분쟁 민원 3만 495건 중 분조위에 회부된 사례는 0.095%인 29건에 그쳤고 분조위 조정안에 쌍방이 수락한 경우는 17건에 불과했다.
새 정부는 신속상정제도 도입과 인력 확충을 통해 분쟁 조정의 실효성을 높인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금융 분쟁 조정의 독립성·중립성을 강화하고자 분조위 내 소비자단체 위원 비중 확대 등도 함께 추진한다. 이미 이 같은 내용은 ‘국정과제 이행 계획서’ 세부 내용 중 하나로 포함됐다. 현재 분조위는 금감원 내부 2명, 소비자단체 4명, 금융계 4명, 법조계 10명, 학계 14명, 의료계 1명 등 총 35명 이내로 구성된다. 금융위원회는 금감원·금융협회·소비자단체 등의 유관 기관 의견을 수렴해 연내 ‘분쟁조정제도 개선방안’을 수립하고 내년까지 금소법 시행령 개정안 등에 반영한다는 계획이다.
한편 금감원은 20일 환매 중단 사태가 일어난 이탈리아헬스케어 펀드와 관련해 분조위에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추후 회의를 속개하기로 했다. 속개 일정은 정해지지 않았다. 이탈리아헬스케어 펀드는 이탈리아 의료기관이 지방정부에 청구하는 진료비 매출채권에 투자한 상품으로 하나은행은 2017~2019년 투자자 400명을 대상으로 1500억여 원을 판매했다. 2019년 말부터 상환 연기나 조기 상환 실패가 발생해 판매 중단됐으며 현재까지 파악된 피해액은 1100억 원이 넘는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