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2인자인 레이얼 브레이너드 부의장이 “디지털달러를 발행할 경우 달러의 세계적 지배력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발언했다. 공식적으로 연준은 디지털달러 발행을 의회와 백악관의 결정에 따라 추진한다는 중립적 입장이다. 그럼에도 암호화폐 등 디지털 금융시장이 확대되고 중국이 디지털위안화를 발행해 시험 운영에 돌입하는 등 국제 금융 환경이 급변하자 연준 내에서도 디지털달러 발행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본격화하는 분위기다.
로이터통신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브레이너드 부의장은 26일(현지 시간) 미국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 회의에서 “달러의 글로벌 위상을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며 “주요국들이 디지털통화 발행을 추진하는 세계적 흐름을 고려할 때 미국이 디지털달러 발행 없이 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연준이 발행하는 디지털달러는 디지털 금융 시대에도 미국 달러화의 파급력과 안전성을 계속 믿어도 된다는 점을 전 세계에 확인시켜주는 수단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준은 올 1월 디지털달러 발행의 장단점을 설명한 백서를 발간한 뒤 4개월간의 의견 수렴 절차를 최근 마쳤다. 연준 내에서도 디지털달러 발행에 관한 의견은 분분한 것으로 알려졌다. 크리스토퍼 월러 연준 이사는 이미 많은 달러 거래가 디지털로 진행된다는 점과 사생활 보호 문제를 들어 발행에 부정적이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속도보다 정확성이 중요하다”며 신중론에 가까운 입장이다.
브레이너드 부의장은 이날 의회의 의견에 따른다는 연준의 공식 입장을 유지하면서도 디지털달러가 가진 의미를 다각도로 설명했다. 그는 “물리적 현금 사용이 급감하는 만큼 중앙은행이 안전한 디지털통화를 발행한다면 소비자들이 손쉽게 디지털 결제 수단을 활용할 수 있다”며 “만약 민간 스테이블코인이 디지털 지급 결제의 지배적 형태가 된다면 디지털달러는 디지털 지급 결제 시장의 분열에 대처하는 수단이 된다”고 설명했다.
민간 스테이블코인과의 공존 가능성도 설명했다. 그는 “중앙은행디지털화폐(CBDC)는 디지털 금융생태계에서 법적으로 정부가 보증하는 안전하고도 중립적인 층위를 마련한다는 의미”라며 “이는 실질적으로 민간 분야의 혁신을 촉진하고 생태계를 활성화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브레이너드 부의장은 “당장 방향이 결정되더라도 실제로 디지털달러를 발행하는 데는 5년가량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