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영산인 지리산 노고단(老姑壇)이 생태 복원 사업에 나선 지 한 세대 격인 30년이 흘렀다. 원래의 ‘자연’을 어느 정도는 되찾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나가는 와중에 ‘구름 위의 정원’으로 불리는 노고단을 방문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전라남도 구례군에 속한 노고단은 해발 1507m로 ‘구름 위’에 위치해 있지만 접근이 편해 누구나 쉽게 찾는 고산지대다. 등산로를 따라 온갖 야생화를 볼 수 있는 야외 식물원이기도 하다.
노고단 등반은 보통 성삼재휴게소·주차장에서 시작된다. 남원역 등 주요 역·터미널에서는 이곳까지 다니는 버스가 있다. 성삼재가 해발 1100m이니 자동차로 이미 구름 위로 올라온 셈이다. 성삼재주차장에서 노고단 정상까지의 거리는 3.4㎞밖에 되지 않는다. 가는 길도 완만해 등산이라기보다는 산책 같은 걸음으로 3~4시간이면 왕복할 수 있다.
주차장을 출발해 꼬불꼬불 숲길을 통과하면 갑자기 큰 나무들이 없어지고 낮은 초목으로 구성된 너른 들판에 서게 된다. 현재 노고단에 들어갈 수 있는 게이트(노고단탐방지원센터)가 있는 곳이다. 정상에서 바로 700m 아래다. 노고단은 탐방 예약제로 운영되며 하루 운영 시간은 오전 5시~오후 5시로 마지막 입장은 오후 4시다.
게이트를 지나 길을 따라 깔린 나무 데크를 한 걸음씩 오르면 주위의 산들이 점점 아래로 내려앉고 내 몸은 솟아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하얀색 구름이 눈앞에서 흘러가는 것도 보인다. 백운산원추리·복주머니난·지리터리풀 등 이름도 정겨운 야생화들이 별천지를 이루고 있다.
최대성 지리산전남탐방시설과장은 “노고단 일원의 야생화는 아(亞)고산대에서만 자라는 식물로, 다른 지역에서는 쉽게 보기 힘든 소중한 자원”이라고 말했다.
드디어 노고단 정상이다. 멀리 지리산 능선이 우리의 발 아래다. 정상에는 이곳이 노고단임을 알리는 석비와 함께 ‘노고(산신할매)’를 기리는 돌탑이 있다. 산줄기는 동쪽으로 이어지는데 더 가면 지리산의 주봉인 천왕봉까지도 갈 수 있다.
한때 황무지로 변했던 노고단이 오늘날 모습을 되찾은 것은 각고의 노력 덕분이다. 노고단은 우리나라 산악 생태 복원 역사의 산증인이나 다름없다.
노고단은 이미 전통 시대부터 서늘한 기후와 수려한 풍광으로 주목을 끌었다. 1920년대 외국인 선교사들이 더위를 피한다며 별장을 지었다. 인근 마을의 인력을 동원해 거의 정상 부근까지 자재를 운반해 호텔과 교회당·영화관 등을 세웠다. 일제강점기 기간 건물들은 늘어나 한때 50여 동 규모의 마을이 조성됐을 정도였다고 한다. 다만 1948년 여순 사건에 이어 지리산이 전투 지역이 되면서 이들 시설은 모두 파괴됐고 지금은 일부 폐허만 남아 있다.
1970년대 등산 인구가 늘어나면서 노고단은 본격적으로 몸살을 앓는다. 노고단 바로 아래인 성삼재를 이으며 지리산을 관통하는 도로가 생겼고 관광객을 실어 날랐다. 앞서 우리가 버스를 타고 오른 길이다. 접근성이 좋아지면서 사람들이 몰리고 야영까지 하면서 방치된 노고단은 점차 황무지로 변해갔다. 정상 부분에는 한때 군부대까지 주둔했었다. 최고의 절경을 가졌다는 이유로 수난을 당한 것이다.
자연 남용에 대한 반성이 일어나면서 1989년 노고단 지역은 생태계보전지역으로 지정됐다. 이어 1991년에는 자연휴식년제를 도입하며 노고단의 탐방객 출입을 금지했다. 1994년부터 생태 복원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노고단은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도된 고산 지역 복원 사업으로 평가된다.
식물이 다시 자랄 수 있도록 흙을 갈고 야생풀을 이식했다. 이 같은 노력은 결국 성공했다. 복원된 생태계를 유지하기 위해 2001년부터 노고단 탐방 예약제를 도입해 하루 출입 인원을 1870명으로 제한하고 있다. 노고단 식생이 훼손되지 않는 최대 수용 인원이라고 한다.
노고단만 오른 것으로 지리산 등반이 서운한 사람들을 위해 국립공원공단은 ‘지리산 탐방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전남 구례군 반달가슴곰 생태 학습장은 특히 가족 단위 탐방객에게 인기다. 멸종 위기종인 반달가슴곰의 생태를 체험하는 곳으로 매일 5회 안내사가 직접 인솔하는 탐방 해설도 진행된다. 야생 곰 복원 작업에 성공하면서 지리산에는 70여 마리의 반달가슴곰이 실제 살고 있다.
해설사와 동행해 국보 각황전 등으로 유명한 천년 고찰 화엄사를 둘러보는 것도 의미 있다.
/글·사진(구례)=최수문 기자 chs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