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점유취득시효인 20년이 지났더라도 명의신탁자의 토지 점유는 소유권을 인정할 수 없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1997년 부동산실명법이 시행된 이후 명의신탁된 토지 점유권을 다투는 첫 판결이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A씨가 B씨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소유권이전등기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광주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8일 밝혔다.
A씨의 남편인 C씨는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전남 담양의 논 6050㎡를 1997년 2월 농어촌공사에 매도한 뒤 한 달 만에 재매수하면서 B씨의 이름으로 명의신탁을 했다. 이 과정에서 B씨 이름으로 대출을 받아 매매대금을 지급했고, 대출금을 갚는데 필요한 돈을 B에게 지급하기로 했다. 대출금이 모두 변제되면 다시 본인에게 토지의 소유권을 돌려주기로 하는 조건이었다.
이후 해당 토지는 B씨에서 D조합으로, 다시 D조합에서 E씨에게로 총 3차례에 걸쳐 매매가 이뤄지면서 등기상 명의자가 바뀌었고, 그러는 동안에도 해당 토지는 C씨가 점유해왔다. 해당 토지의 매매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C씨는 B씨 등을 배임 등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고, '혐의없음'으로 결론이 나자 제3자 소유권이전등기는 모두 무효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 중이던 2018년 2월 C씨는 사망했고, 원고도 상속자인 아내 A씨와 자녀들로 바뀌었다.
이번 사건은 계약명의신탁에서 명의신탁자의 점유를 소유의 의사로 점유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지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민법 제245조 제1항에 따라 부동산을 20년 간 점유한 자는 소유권을 취득하도록 하고 있다.
1심은 B씨가 해당 토지에 대한 소유권을 유효하게 취득한 이상 A씨로부터 지급받은 토지 매수 자금에 대한 반환 의무만 있다고 판단했다. 나머지 소유자가 바뀐 데 대해서는 명의신탁의 수탁자라는 주장을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다고 봤다. 항소심 재판부는 모든 소유권이전등기를 무효라고 판단하고 A씨의 소유권 인정했다. 재판부는 "부동산실명법이 명의신탁 약정을 무효로 선언한다고 해서 명의신탁자의 소유의 의사까지 부정하는 취지는 아니다"라며 "오히려 명의신탁 약정은 당사자 사이에서는 명의신탁자가 목적물의 소유자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므로 그 자체로 명의신탁자에게 소유의 의사가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C씨의 소유권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자신이 소유권을 취득하지 못한다는 사정을 잘 알면서 토지를 점유했고, 이는 악의의 무단점유에 해당해 토지를 소유의 의사로 점유한 것이라고 볼 수 없으므로 점유취득시효를 주장할 수 없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명의신탁자의 토지 점유는 다른 사정이 있지 않는 한 소유권 취득의 원인이 될 수 있는 법률 요건이 없는 사실을 알면서 타인의 부동산을 점유한 것"이라며 "때문에 점유취득시효인 20년이 지났더라도 소유권을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이번 판결에 대해 대법원은 "계약명의신탁약정에 따라 부동산을 점유하는 명의신탁자의 점유는 자신이 부동산의 소유권을 취득하지 못한다는 사정을 명확히 알고 점유하는 것으로서 자주점유가 될 수 없고, 따라서 점유취득시효 완성을 주장할 수 없다는 점을 명시적으로 선언했다는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