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동향

첨단 R&D도 稅지원 퇴짜…대기업 '역차별'에 공제율 2% 불과

[정상화 시급한 누더기 세제] <2> 초격차 가로막는 세금 장벽

'AI 반도체' 등 기술 개발해도 포지티브 규제 탓 稅혜택 없어

민간 R&D 갈수록 쪼그라들어…日은 공제율 17%로 확대

"R&D 예산 곳곳 누수…차라리 삭감해 세액공제로 돌려야"

삼성디스플레이가 개발한 두 번 접히는 디스플레이 장치를 기술 박람회 관람객들이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삼성디스플레이가 개발한 두 번 접히는 디스플레이 장치를 기술 박람회 관람객들이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삼성디스플레이가 이달 중 액정표시장치(LCD) 사업에서 완전 철수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재계에서는 “아쉽다”는 반응이 나왔다. LCD 산업의 낮은 기술 허들과 이에 기반한 중국의 저가 공세를 감안하면 철수는 예정된 수순이었지만 그 과정에 디스플레이 산업에 대한 정부의 ‘홀대’가 숨어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실제 올 1월 국회를 통과한 국가첨단전략산업특별법에 디스플레이 산업은 포함되지 못했다. 특별법은 반도체·2차전지·백신 등 전략산업에 대해 연구개발(R&D) 비용의 최대 40%(대기업 기준)를 세금에서 감면(세액공제)해주는 제도다. 부품 업계의 한 관계자는 8일 “지난해 28조 원을 수출한 한국 대표 산업을 전략산업으로 인정해주지 않는 것 자체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며 “연구개발(R&D) 세제 개선이 이뤄지지 않으면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산업의 초격차 유지도 위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한민국 경제가 저성장의 함정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기업의 R&D와 투자를 저해하는 우리 세금 제도 전반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해 세법 개정안에서 국가전략기술에 대한 대대적 세액공제 혜택을 내놓기는 했지만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산업이 많고 제도 자체에도 허점이 있어 투자 확대에 역부족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대기업 증세를 내건 문재인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R&D 세제 지원을 늘리는 글로벌 트렌드에 역행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우리 경쟁 국가인 일본이 R&D 비용에 대한 세액공제율을 늘린 것과 반대로 기존 2~3%였던 대기업 세액공제율을 2018년 0~2%로 낮췄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는 ‘4차 산업혁명’을 외치면서 실질적으로는 세금 혜택을 줄인 것이다.



이런 지적에 정부는 “국가전략산업이나 신성장 R&D 세액공제를 받으면 된다”고 하지만 산업 현장의 반응은 완전히 다르다. 정부가 R&D 세액공제 혜택을 줄 때 법에서 열거하는 기술을 빼고는 모두 혜택을 금지하는 ‘포지티브’ 방식을 취하고 있어 첨단 기술에 투자하면서도 세금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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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해 말 메모리 내부에 인공지능(AI) 프로세서 기능을 더한 지능형 반도체를 개발하고 있지만 정부가 리스트에 올리지 않은 기술이라는 이유로 R&D 공제를 받지 못한 반도체 부품사 A 사를 일종의 역차별 사례로 제시하기도 했다. 대기업에 대한 역차별 속에 세제 혜택마저 줄어들자 2000년부터 10년 동안 연평균 12.7%였던 민간 부문 R&D 증가율은 2016년 이후 연평균 7.6%로 낮아졌다.

정부가 일단 세금을 잔뜩 매겼다가 이를 세액공제 형태로 감면해주는 현재의 조세 체계 자체에 이미 상당한 비효율성이 내재돼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의 법인세 운용이 이 같은 비효율성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정부는 올해 법인세 감면액을 약 10조 3000억 원으로 전망하는데 이는 올해 본예산에 반영된 법인세 세수 74조 9000억 원의 13.7%에 이르는 금액이다.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을 지냈던 한 전직 관료는 “문재인 정부가 법인세율 자체를 높게 잡았다가 경기가 꺾이는 과정에서 각종 세금 혜택을 늘리다 보니 결과적으로 기업 경영에 정부의 간섭이 커지는 형태로 법인세 체계가 후퇴했다”며 “저(低)세율, 저 세금 감면이 새 정부 경제철학 기조에는 더 적절하다”고 설명했다.

집행 과정에서 누수가 발생해 매년 비효율성을 지적받는 R&D 예산을 삭감해 차라리 세액공제로 돌리는 게 낫다는 목소리도 크다. 정부가 올해 예산에 반영해둔 R&D 예산이 29조 8000억 원에 이르지만 그 성과는 크지 않다는 게 관가 안팎의 평가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정부 R&D 예산의 절반은 국책 연구소 등으로 빠져나가고 나머지 금액 중 상당수는 중소·중견기업에 배정돼 사실상 나눠먹기식 구조로 운영되고 있고, 이 과정에서 연구의 생산성이 떨어지게 된다”며 “여러 이익집단이나 감사원 등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관료 대신 기업이 직접 뛰게 하고 세금 지원을 하는 게 효율성 측면에서 더 좋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장기적 호흡으로 잠재 성장력 제고에 유리한 세제 개편안을 내놓아야 한다는 지적도 함께 나온다. 이인실 서강대 교수는 “2010년 영국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제임스 멀리스 케임브리지대 교수를 책임자로 임명해 2050년까지 나아갈 조세정책 방향을 제시한 ‘멀리스 리뷰’를 우리나라도 참조할 필요가 있다”며 “단년도 세제 개편에만 매달리지 말고 우리 경제구조에 걸맞은 최적화된 세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세종=서일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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