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로 취임 한 달째를 맞은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운영 키워드는 단연 ‘민생’이었다. 코로나19 여파에 따른 경기 침체, 우크라이나 전쟁발 물가 상승, 주택 전월세 폭등 조짐 등 새 정부를 둘러싼 대내외적 경제 여건은 불안 수준을 넘어 위기로까지 번지는 상황이다. 윤 대통령이 지난 한 달 동안 민생 안정 방안에 매진한 이유다.
◇회의 때마다 물가·위기 강조=윤 대통령은 취임 후 8일까지 수석비서관회의와 국무회의를 각각 세 번씩 주재했다. 부동산 시장 안정, 코로나19 손실보상 등 다양한 민생 이슈가 의제로 다뤄졌지만 그중에서도 윤 대통령이 가장 많이 강조한 것은 ‘물가’였다. 윤 대통령은 취임 다음 날 첫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회의를 열자마자 “제일 문제가 물가”라고 말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대비 5.4% 올랐다. 2008년 8월(5.6%) 이후 13년 9개월 만에 최대 상승 폭이다. 올 하반기에는 6%대 물가 상승률을 맞이할 수 있다는 비관적인 관측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윤 대통령이 “그야말로 정말 구두 밑창이 닳아야 한다”며 위기감을 드러낸 이유다. 이후에도 윤 대통령은 “물가와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각별히 노력해달라(5월 16일)”, “가용 수단을 총동원해서 국민들의 생활물가 안정에 총력을 다하라(5월 30일)” 등의 발언들을 직접 주재하는 회의에서 쏟아냈다.
윤 대통령의 첫 현장 행보도 ‘경제’였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13일 거시금융상황점검회의를 주재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경제와 민생 안정을 정책의 최우선순위에 두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고 말했다.
◇민간 중심 성장…교육 개혁·과학기술·脫규제=윤 대통령은 ‘과학 대통령’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과학 및 산업 기술을 중시하는 모습도 보였다. 민생 안정은 결국 경제성장이 필수적인데 앞으로의 성장은 과학기술 분야의 ‘초격차’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인식에서다.
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도 “도약과 빠른 성장은 오로지 과학과 기술, 그리고 혁신에 의해서만 이뤄낼 수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과학기술 인재를 키워내는 것은 생사가 걸린 문제”라며 교육 개혁을 과학기술 발전의 필수 조건으로 제시했다. 윤 대통령은 전날 국무회의에서 ‘반도체 인력 양성이 수도권 대학 정원 규제 때문에 힘들다’는 입장을 밝힌 교육부에 “교육부는 과학기술 인재를 공급하는 역할을 할 때만 의미가 있는데, 그런 역할을 수행하지 않으면 교육부가 개혁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강하게 질타한 것으로 전해졌다.
기업 투자를 막아 경제성장의 ‘모래주머니’ 역할을 하는 각종 규제들 역시 윤 대통령의 청산 목표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주요 기업이 5년간 1000조 원을 투자하고 30만 명 이상을 신규 채용하겠다는 큰 계획을 발표했다”며 “이제는 정부가 기업 투자를 가로막는 규제를 풀어서 화답할 때”라고 선언했다. 한덕수 국무총리의 요청으로 윤 대통령이 주재할 규제혁신전략회의 역시 이르면 이달 첫 회의를 개최한다.
◇소통 또 소통…74년 만에 출퇴근 대통령=윤 대통령은 한 달간 숨 가쁘게 ‘경제’를 외치면서도 “구중궁궐에서 빠져나오겠다”는 약속을 착실히 지켰다.
청와대를 국민에게 완전 개방하고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으로 옮겨 헌정 사상 처음으로 출퇴근하는 대통령이 된 것이다. 집무실 이전 공약을 놓고 졸속 이전 비판이 일기도 했지만 취임과 동시에 개방된 청와대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지며 부정적 여론도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윤 대통령이 주말에는 서울 서초구 사저에 머무는 만큼 부인 김건희 여사와 주말 나들이를 하며 시민들과 접촉하는 모습도 다수 연출됐다. 윤 대통령은 이번 주말에도 김 여사와 함께 서울의 한 영화관에서 배우 송강호 씨가 칸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영화 ‘브로커’를 관람할 예정이다.
‘용산 시대’를 상징하는 장면은 윤 대통령의 출근길 ‘도어스테핑’이다. 윤 대통령이 오전 8시 30분~9시쯤 집무실에 출근한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약 30~40명의 기자들이 윤 대통령의 예상 동선에서 기다린다. 한미정상회담, 외부 일정, 지방 일정 등 특수한 상황이 아니면 대통령과 기자들의 만남은 당연시되는 분위기다. 기자들이 그날의 가장 민감한 질문을 던지면 윤 대통령은 적극적으로 반박하거나 의도적으로 답하지 않고 출근한다. 모든 모습은 언론을 통해 국민들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윤 대통령이 새로운 대통령상의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후보 시절 대통령이 돼서도 ‘백브리핑’을 하겠다고 한 만큼 앞으로도 카메라 앞에 서는 대통령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