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동십자각]수문랑과 천국노래자랑

조상인 문화부 차장





일요일 한낮이 평소 같지 않았다. 쾌활한 목소리로 무려 34년간 “전국~노래자랑”을 외치던 그의 부재 때문이다. 기네스북에 등재될 정도로 오랜 세월 마이크를 쥐었던 ‘국민 MC’ 송해 선생이 떠났다. 그의 발인 날 추도사를 맡은 후배 개그맨 이용식 씨는 “이곳에서 ‘전국노래자랑’을 많은 사람과 힘차게 외쳤지만 이제는 수많은 별 앞에서 ‘천국노래자랑’을 외쳐달라”며 흐느꼈다. 생전의 빛나던 업적으로 고인을 기리는 비유였다. 떠난 이를 추앙하는 아름다운 표현이다.



“수문랑(修文郞)을 뽑으려고 네 노인을 재촉해 데려가니(修文催四老)/ 세상에 남은 친구들의 눈물이 옷깃에 흥건하네(餘伴淚盈襟).”

퇴계 이황의 11대손인 경북 안동의 선비 이만정이 1941년 세상을 뜨자 주변의 선비들이 추모하며 쓴 제문(祭文)이다. 닦을 수(修)와 글월 문(文) 자에 사내 랑(郞) 자를 붙인 ‘수문랑’이 무엇인고 하니, 저승에서 글 짓는 업무를 담당하는 일종의 벼슬을 뜻한다. 진(晉)나라 사람 소소(蘇韶)의 고사로, 송나라 초 왕명으로 엮은 설화집 ‘태평광기(太平廣記)’에 등장한다. 소소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는 사람의 꿈에 나타났는데 “내가 저승에 가보니 공자의 제자 안연(顔淵)과 복상(卜商)이 그곳에서 ‘수문랑’으로 있더라”고 말했다는 것에서 비롯했다. 그때부터 문인(文人)의 죽음을 비유하고 그의 문재(文材)를 높이는 말로 자리 잡았다. 이만정은 어려서부터 글재주로 인근에 이름을 떨쳤지만 1910년 경술국치 이후 망국의 설움과 함께 관직에 대한 뜻을 접고 초야에 묻혀 지냈다.



“하늘나라에 대규모 신축 공사라도 있는 모양입니까. 조각과 동양화·서양화까지 좋은 작업 하시던 분들을 불러 가시네요.”

관련기사



2020년 11월에 조각가 최만린과 서세옥, 곧이어 2021년 1월에 김창열 등 원로 미술가들이 연이어 영면에 들었을 때도 미술인들은 비슷한 얘기를 했다. 더 이상 볼 수 없는 이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달리 표현한 말에 눈물과 미소가 포개졌다. 최근에는 문화계의 거목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부터 이외수·김지하의 부고가 이어졌다. 수문랑은 든든하게 채워졌을 듯하다.

어떤 이름으로 기억될 것인가. 지난달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 이후 많은 것이 상당히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금단의 공간이던 청와대가 국민의 품에 안겼고 이제는 문화재 지역이자 일종의 관광 필수 코스로 탈바꿈한 것이 대표적이다. 새 정부의 추진력의 한편에서는 권력이 원하든 원치 않든 인력(引力)이 발생한다. 임기가 끝난 공공 기관장 자리를 두고 ‘누가 입맛에 맞을지’ 혹은 ‘누구 입맛에 맞출지’ 저울질하는 사람들에 대한 얘기다. 자리를 지키려 그간 완강하던 태도를 바꿔 취하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줄 바꿔 타기’의 기회를 노리는 이도 있다.

예술은 힘이 세지만 예술 기관은 여타 분야에 비해 유독 힘이 없다.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미술인 출신인지라 시키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맞추려는 사람들도 눈에 띈다. 한심하다. 김 여사는 조용히 지내고 싶다 하더라도 흔들어대는 사람들이 많아 곤란하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예술은 인생보다 길고 권력보다 오래 남는다.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어떤 자리를 지킬지 욕심 내기보다는 어떤 이름으로 남을지 고민하기를 바란다.

조상인 미술전문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