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총기 규제 관련 법안 처리를 촉구하는 시위 현장에 한 괴한이 난입해 “내가 총이다”라고 외쳤고, 놀란 대규모 군중은 순식간에 혼비백산했다. 다행히 괴한은 비무장 상태였고, 크게 다친 이들도 없었다.
12일(현지시간) 뉴욕포스트 등 외신에 따르면 전날 워싱턴DC 내셔널 몰에서 열린 ‘우리 삶을 위한 행진(March for Our Lives)' 집회 도중 괴한이 난입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집회는 미국 전역 450여개 도시에서 동시 개최됐으며 워싱턴에는 최소 5만 명이 참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집회는 지난달 말 텍사스주 소도시 유밸디에서 일어난 ‘롭 초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 피해자를 추모하는 묵념으로 시작됐다. 모두가 애도하던 순간, 무대 쪽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한 남성의 외침이 들려왔다. 그는 “내가 총이다”라고 소리 질렀고 ‘총’이라는 단어를 들은 사람들은 일제히 뒤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당시 상황이 포착된 영상에는 깜짝 놀란 군중이 몸을 피하려 전력으로 질주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여러 명이 함께 넘어지기도 하고, 일부는 펜스를 뛰어넘다 쓰러진다. 넘어진 자들을 일으켜 세워주는 사람도 보였다.
한 시민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공포에 질린 사람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이상하고 무서웠다”며 “이후 나는 친구들과 현장을 떠났다"고 말했다.
문제의 남성이 붙잡히고 무대 위 연사가 “도망치지 않아도 된다”고 사람들을 안심시키면서 혼란은 짧은 시간 안에 정리됐다. 확인 결과 남성은 총기 규제를 지지하는 시위 참가자 중 한 명이었으며, 총기 등 무기류를 소지하지 않은 비무장 상태인 것으로 파악됐다. 그는 곧바로 호송차로 옮겨져 집회가 이어지는 동안 구금됐다고 한다.
이처럼 총기 규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규제를 두고 의견차를 보였던 민주당과 공화당 의원들은 결국 입법 협상을 타결했다. 시위 이튿날인 이날 미국 상원 의원들은 합의안을 도출했다고 밝혔다.
합의안에는 이른바 ‘레드플래그(red flag)법’을 시행하는 주(州)에 인센티브를 지원하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레드플래그법은 위험 인물이 총기를 소유할 수 없도록 법원에 청원할 수 있게 하는 법이다. 현재 워싱턴 등 19개 주에서 시행되고 있다. 또한, 총기를 구매하는 18~21세의 신원 조회를 위해 미성년 범죄 기록물 활용, 학교 안전 및 정신 건강 프로그램 강화 방침 등도 포함됐다.
다만 조 바이든 대통령이나 민주당 측이 요구해온 것과 비교하면 이번 합의안은 미흡한 수준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그간 민주당 측이 주장해온 공격용 소총 판매 금지 등 직접적인 제재안은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관련 입법을 저지해왔던 공화당 상원의원 일부가 이번 합의안 논의에 참여하면서 미국 의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높다고 외신은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