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연일 치솟는 연료 가격을 끌어내리기 위해 휘발유와 디젤 등의 해외 수출을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에너지 가격 급등이 부추기는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유럽 등 우방에 대한 공급 물량까지 잠그는 초강수를 고려한다는 의미다.
블룸버그통신은 16일(현지 시간) 조 바이든 행정부가 휘발유·디젤 수출 제한을 논의 중이며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가 에너지 수출을 제한할 법적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올해 미국의 일일 휘발유 수출량은 75만 5000배럴로 지난해 동기(68만 1000배럴) 대비 약 10% 증가했다. 수출 규제가 시행될 경우 연료 수출량은 종전 수준으로 제한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에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미국이 글로벌 에너지 수급난 해결에 앞장서며 연료 수출을 대폭 늘려온 탓에 국내 물가가 역풍을 맞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원자재 정보 업체 케이플러를 인용해 3~5월 걸프만 내 휘발유·디젤·제트연료 출하량이 지난해 동기 대비 32% 늘었으며 천연가스 역시 3월 기준 전체 생산량의 22%를 수출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지난달 미국 천연가스 선물 가격은 장중 14년래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미국 내 휘발유 가격은 11일 처음으로 갤런당 5달러를 넘어선 상태다.
WSJ는 셰일붐으로 공급이 충분해 연료 수출이 국내 물가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던 과거와 달리 코로나19로 생산량이 쪼그라든 상황에서 수출이 늘자 미국 내 연료 가격이 압박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가파른 인플레이션과 그에 따른 경기 침체 우려로 11월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의 패배를 우려하는 바이든 정부로서는 어떻게 해서든 유가를 안정시키는 게 급선무라는 것이 외신들의 평가다.
다만 미국의 이 같은 행보가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를 낮추고 미국 의존도를 높이고 있는 유럽과의 외교적 마찰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블룸버그는 바이든 대통령이 유럽에 충분한 에너지가 공급되도록 돕겠다고 거듭 약속했음을 지적하며 “(제한 조치가) 미국의 다른 지정학적 우선순위와 상충할 가능성이 있다”고 평했다.
게다가 장기적으로 수출 제한에 따른 휘발유 가격 인하 효과가 작다는 지적도 있다. 미 정유사들도 “바이든 정부가 정유사의 고수익을 비판하며 증세와 공급량 확대를 요구하는 동시에 투자 확대의 기반인 수출을 차단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제니퍼 그랜홈 미 에너지장관은 23일 대형 석유사 7곳과 긴급 회의를 열고 관련 논의를 벌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