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한국 시간) 제122회 US 오픈 골프 대회 우승으로 315만 달러(약 40억 7000만 원)의 잭팟을 터뜨린 매슈 피츠패트릭(28·잉글랜드)은 자고 나니 벼락 스타가 된 케이스가 아니다. 어릴 때부터 자신의 모든 샷을 꼼꼼히 기록하고 되돌아본 ‘메모 광’이다. 30분 먼저 경기를 마친 슈퍼스타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가 일부러 기다렸다가 “피나는 노력을 드디어 보상 받았다”고 축하하며 제 일처럼 기뻐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피츠패트릭은 이날 미국 매사추세츠주 브루클라인의 더 컨트리클럽(파70)에서 끝난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시즌 세 번째 메이저 대회 US 오픈에서 최종 합계 6언더파 274타로 우승했다. 세계 랭킹 1위 스코티 셰플러(미국)와 지난달 메이저 PGA 챔피언십 준우승자 윌 잴러토리스(미국)가 1타 차이인 5언더파 공동 2위다.
DP 월드 투어(옛 유러피언 투어) 통산 7승의 피츠패트릭은 PGA 투어 첫 우승을 메이저 무대에서 터뜨렸다. 18위였던 세계 랭킹은 10위까지 뛰어올랐다. 셰플러가 세계 1위를 지킨 가운데 이번 대회 2언더파 공동 5위의 매킬로이가 세계 2위로 한 계단 올라섰다.
PGA 투어 전문 기자인 댄 라파포트에 따르면 피츠패트릭은 대회 때는 물론 연습 때도 샷 하나하나를 전부 기록한다. 예를 들어 목표 지점까지 165야드 거리에서 8번 아이언을 쳤는데 공은 161야드를 날아가 핀 8야드 왼쪽에 멈췄다. 피츠패트릭은 이때 4야드의 캐리(날아간 거리) 미스와 그린에서 8야드의 오차를 자신만의 차트에 다 적어 넣는다. 홀까지의 거리가 기준이 아니라 자신만의 타깃이 기준이기 때문에 첨단 시스템보다 수기가 더 정확하다고 믿는다. 열다섯 살 때부터 노트를 쓰기 시작했으니 13년간의 자료가 쌓였다. 키 178㎝에 70㎏ 안팎의 평범한 체구로 PGA 투어의 ‘거인’들을 내려다볼 수 있었던 데는 이런 남다른 디테일이 있었다. 아버지 러셀은 “아들과 1주일을 붙어 있어 보면 미쳤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동생 앨릭스는 “형은 매일 1%씩 업그레이드하며 다른 사람들과 차이를 키우고 있었다”고 돌아봤다.
아마추어 최고 권위 대회인 US 아마추어 챔피언십 2013년 대회의 메모도 당연히 갖고 있을 것이다. 피츠패트릭이 동생 앨릭스에게 캐디를 맡겨 우승한 당시 장소는 다름 아닌 이날 우승컵을 들어 올린 더 컨트리클럽이었다. 현지 매체에 따르면 피츠패트릭은 9년 전의 우승 기운을 받기 위해 당시 머물렀던 집을 찾아 그때 그 침대에서 자면서 US 오픈에서의 반란을 꿈꿨다. US 아마추어와 US 오픈을 같은 코스에서 우승한 선수는 잭 니클라우스(미국) 이후 피츠패트릭이 처음이다.
3라운드에 잴러토리스와 공동 선두였던 피츠패트릭은 이날 4라운드에서 버디 5개와 보기 3개로 2언더파 68타를 쳤다. 후반 초반 잴러토리스에게 2타 차로 뒤지던 피츠패트릭은 12번 홀(파4)에서 상대 보기에 1타를 따라붙은 뒤 13번 홀(파4)에서 15m의 먼 거리 버디 퍼트를 넣어 공동 선두를 되찾았다. 잴러토리스가 1타를 잃은 15번 홀(파4)에서 피츠패트릭은 5.5m 버디를 넣어 2타 차 단독 선두로 치고 나갔고 1타 차로 쫓긴 마지막 18번 홀(파4)에서 티샷을 벙커에 빠뜨렸지만 끝내 연장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립 끝을 한 뼘이나 남길 정도로 짧게 잡은 9번 아이언으로 자신 있게 때린 볼은 핀 뒤 6m에 멈춰 섰다. 피츠패트릭은 “가깝게 붙이겠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주니어 선수처럼 본능적으로 쳤다”고 했다. 그린 위 핀이 보일까 말까 할 만큼 턱이 높았고 볼이 놓인 위치도 평평하지 않았다. 잴러토리스는 “스무 번 치면 한 번 나올 만큼의 멋진 샷”이라며 찬사를 보냈다.
2퍼트 파로 마친 피츠패트릭은 잴러토리스의 마지막 버디 퍼트가 살짝 빗나간 뒤에야 미소를 보였다. 생체역학 전문가까지 섭외한 치밀한 프로젝트가 화려한 결실을 보인 순간이었다. 피츠패트릭은 2020년 겨울부터 인공지능(AI) 기반의 특수 애플리케이션으로 스윙 스피드 늘리기에 ‘올인’ 했다. 그 결과 헤드 스피드가 5마일(시속 8㎞) 이상 늘었다.
디펜딩 챔피언 욘 람(스페인)이 1오버파 공동 12위로 마친 가운데 스무 살 김주형은 마지막 날 이븐파를 쳐 23위(3오버파)로 순위를 끌어올렸다.
사우디아라비아 자본이 이끄는 LIV 골프 인비테이셔널로 넘어간 선수 중에는 더스틴 존슨(미국)이 4오버파 공동 24위로 가장 잘 쳤다. 존슨은 “(투어 이적은) 어려운 선택이었지만 옳은 결정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필 미컬슨(미국)과 세르히오 가르시아(스페인), 케빈 나(미국), 루이 우스트히즌(남아공) 등 대부분의 ‘LIV파’들은 2라운드 뒤 컷 탈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