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사장단이 20일 경기 용인 삼성인력개발원에서 가진 전자 계열사 경영회의에서 다룬 화두는 대부분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부회장의 귀국길 메시지와 맞닿아 있다. 유럽 출장을 마친 이 부회장의 소회 한 마디 한 마디가 곧바로 조직 전반의 위기의식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18일 이 부회장이 공항에서 “첫 번째도 기술, 두 번째도 기술, 세 번째도 기술”이라고 강조한 발언은 이날 회의의 최대 숙제로 떠올랐다. 삼성 사장단은 회의를 진행하며 ‘차세대 기술 개발’ 논의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앞서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SGBAC)를 통해 입국한 이 부회장은 취재진과 만나 “몸은 피곤했지만 자동차 업계의 변화, 급변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며 “네덜란드 ASML과 벨기에 반도체연구소(imec)에 가서 차세대·차차세대 반도체 기술이 어떻게 되는지 느낀 게 제일 중요했다”고 말했다.
사장단은 삼성이 명실상부한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한계를 돌파해 산업을 선도할 수 있는 ‘기술 리더십’을 확보해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반도체,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전기차용 배터리, 부품 등 각 사업마다 현 수준에 안주하면 안 된다는 결론이었다. 각 그룹사는 이날 토의 결과를 바탕으로 미래를 선도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 개발을 위한 중장기 기술 로드맵을 재점검하기로 했다. 구체적인 실행 계획도 곧바로 마련하기로 했다.
삼성 사장단은 차세대 기술 개발 외에 △글로벌 인플레이션 △공급망 충격 △정보기술(IT) 제품 수요 급감 등 글로벌 위험 요인도 다시 살폈다. 이 역시 “한국에서는 못 느꼈지만 유럽에 가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훨씬 더 (뚜렷이) 느껴지더라”는 이 부회장의 귀국길 발언과 무관하지 않다.
일각에서는 삼성이 이 부회장의 유럽 출장을 기점으로 과감한 인수합병(M&A), 시설 투자 작업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실제로 이 부회장이 둘러본 유럽은 독일 인피니언, 네덜란드 NXP, 영국 암(ARM) 등 반도체 관련 주요 M&A 후보군이 밀집한 지역이다. 이 부회장이 출국한 6월 7일은 공교롭게도 1993년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이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신경영 선언’을 내놓은 날과 같다. 재계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다음 달에도 미국 아이다호주의 휴양지 선밸리에서 열리는 ‘앨런&코 콘퍼런스’에 직접 방문하는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 이 행사는 글로벌 거대 기업의 수장들이 M&A나 협력 체계 구축 등을 논의하는 장으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