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메디컬 인사이드] "난소조직 동결해두면…암치료 따른 난임 줄일 수 있어요"

■ 이다용 서울아산병원 산부인과 교수

항암치료로 난소 기능 손상돼

가임력 상실하는 경우도 많아

임신계획 등 면밀히 살필 필요

韓 아직 출산 성공사례 없지만

美 수준까지 발전시키는 게 꿈

이다용 서울아산병원 산부인과 교수가 난임과 가임력 보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제공=서울아산병원이다용 서울아산병원 산부인과 교수가 난임과 가임력 보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제공=서울아산병원




“가임력보존 클리닉에서는 스물 예닐곱 나이에 조기 폐경이 발생한 환자들을 종종 만납니다. 갑작스러운 암진단에 충격을 받고 덜컥 수술을 받았는데, 난소 기능이 손상될 수 있다는 걸 미쳐 몰랐던 분들도 많아요. 그럴 때마다 안타깝죠. "






이다용 서울아산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23일 서울경제와 만나 "원치 않는 난임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에게 가임력 보존 연구로 희망을 전하고 싶다"며 이 같이 말했다.

서울아산병원은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가 선정한 ‘2022년 세계 병원 평가’에서 국내 병원 중 유일하게 30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그 중 암 분야는 세계 5위다. 그만큼 많은 환자들이 암진단과 치료, 후속 관리를 위해 다녀간다. 이 교수도 유방외과·영상의학과·종양내과 등 여러 진료과와 함께 가임력보존클리닉에 참여하며 젊은 여성 유방암 환자들을 자주 접한다. 질환이 진행된 상태에서 진단되다 보니 이미 난소 기능이 저하되어 있는 환자들도 많다. 항암 치료나 수술 과정에서 난소 기능이 손상돼 가임력을 상실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자궁내막증과 같이 가임기 여성에게서 매우 흔한 양성 질환을 수술한 뒤에 난소 기능 손상이 발생하는 사례도 꽤 된다. 치료 시작 전부터 임신 계획과 난소 기능 저하 가능성 등을 면밀히 살폈더라면 선택지가 조금은 더 넓어졌을지 모르는 환자들이다.



이 교수는 수련의 시절에 진료했던 유방암 생존자가 했던 말을 되새기곤 한다. 병원에서 유방암 진단을 받았을 때보다 아이를 못 갖는다는 말이 더 충격이었다는 것. 아직 임신이나 자녀 계획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지 않았을 법한 젊은 여성들에게 난임 진단은 어쩌면 시한부 선고 만큼이나 무거울지 모른다. 그가 바삐 돌아가는 병원 일상 중 가임력보존클리닉 환자들과 만나는 시간을 가장 소중히 여기는 이유기도 하다. 이 교수는 "수술 전 가임력 상담이 의무적인 요소는 아니지만 누군가에게는 (난임이) 삶의 방향을 변화시킬 정도로 큰 영향을 갖는 문제"라며 "환자 뿐 아니라 의료진들 사이에서도 가임력 보존에 대한 관심이 더 확대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언젠가 예비 엄마가 될지 모르는 여성들의 임신 가능성을 높이는 것 또한 난임 치료의 일부분이라고 믿기에 모든 상담 순간에 진심을 담아 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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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용 서울아산병원 산부인과 교수가 난임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사진 제공=서울아산병원이다용 서울아산병원 산부인과 교수가 난임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사진 제공=서울아산병원


저출생 문제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심각한 사회적 문제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지난해 연간 합계 출산율(가임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의 수)은 0.81명으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8개국 중 최하위다. 4년 연속 1명을 밑돌고 있다. 이 교수는 “원치 않는 여성에게 출산을 강요하기 보다는 자발적으로 임신을 원하고 가족을 구성하길 원하는 부부를 돕는 것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의 몸에서 생산되는 난포의 숫자는 제한적이고, 월경 주기에 따라 소실된다. 결혼, 출산 시기는 갈수록 늦어지는데 생물학적으로는 34세 이후부터 배아의 염색체 이상 비율이 높아진다. 난임으로 이어질 확률도 높아질 수 밖에 없다. 이 교수는 '계획적 난자동결'에 희망을 걸고 있다. 다행히 최근에는 배아, 난자와 같은 세포 단위의 동결보전 뿐 아니라 난소조직 자체를 얼리는 시술도 가능해졌다. 미국, 유럽에서는 이미 난소조직 동결보존이 정식 치료로 인정되며 130명이 넘는 아이가 태어났다. 암치료 중 불가피한 난소 손상 위험에 노출된 환자 입장에선 선택지가 늘어난 것이다.

한국은 이제 막 난소조직 동결보전을 시작하는 단계로, 아직 출산에 성공한 사례는 없다. 난임 치료의 권위자로 꼽히는 이정렬 서울의대 교수 연구실에서 박사 과정을 보낸 이 교수는 당시 국내 최초로 동결보존한 난소조직을 해동한 후 재이식을 통해 실제 난자 채취에 성공했다. 올해 초에는 대한가임력보존학회에서 관련 연구 성과를 인정받으며 최우수 구연상을 받았다. 새로 자리잡은 서울아산병원에서도 난소조직 동결보존 시술을 준비 중이다. 국내 첫 출산 성공을 넘어 미국, 유럽에 뒤지지 않는 수준까지 발전시키고 싶은 게 그의 꿈이다. 이 교수는 "머지않아 국내에서도 난소조직 동결보존이 정식 치료로 인정 받고 보험급여 지원이 가능한 시점이 올 것이라 믿는다"며 "동결보존된 세포나 조직을 통해 난소를 재구성하는 인공난소와 같은 혁신 기술의 연구에도 기여하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서울경제가 새로 시작한 ‘메디컬 인사이드’ 코너는 보건·의료계에서 주목받는 의료진과 병의원의 활약상을 전달하는 연재물입니다. 임상연구·개발과 진료 등의 영역에서 최근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의료진과 만나 숨겨진 이야기들을 인터뷰 형식으로 소개합니다. 또한 의료기관 내 다양한 진료과와 부서 차원의 협력을 통해 의료계 변화를 선도하는 센터를 직접 찾아가 현장의 이야기를 전할 예정입니다.


안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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