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로 여는 수요일]자화상 그리기


- 김명옥


끙끙 앓는 날은 무릎걸음으로 다가가는 저 여자

죽을 만큼 아파보면

삶이 가벼워지기도 한다는 저 여자

마음 아픈 날에는 시집을 덮고 돌아눕는 저 여자

눈물 나는 날은 가까이 보이기도 하는 저 여자

다른 방법은 알지 못해서 저 여자

허공에 갇혀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저 여자



겹겹이 쌓인 시간의 껍질을 벗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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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를 발굴하는 작업

아직, 무엇이 더 남았냐고 내게 묻는 저 여자

어디로

달려 나가려는 것일까

아니면 한 천년 주저앉으려는 것일까

어쩌다가 눈이 마주치면

서둘러 외면하고 싶은 저 여자





끙끙 앓아도 모른 척했던 저 여자, 죽을 만큼 아파도 살 만한 줄 알았던 저 여자, 시집살이가 시집 읽기와 비슷한 줄 알았던 저 여자, 주르르 흘러도 안구 건조로 넣은 인공눈물인 줄 알았던 저 여자, 모든 방법을 알아서 다른 방법을 찾지 않는 줄 알았던 저 여자, 여러 호칭에 겹겹이 싸여 여자인 줄 몰랐던 저 여자, 달려 나가려 하면 잡아당겨지고 주저앉으려 하면 떠밀렸던 저 여자, 거울을 보다 먼 산 바라보던 엄마, 아내, 그리고 딸들. 달의 뒷면처럼 남자는 볼 수 없는 그녀들의 자화상, 제 발 저린 남자들이 서둘러 외면하고 싶은.

-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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