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하던 수출이 무너지고 있다. 지난달 수출 증가율이 16개월 만에 처음으로 한 자릿수를 기록한 데 이어 글로벌 경기 악화로 올 하반기 마이너스로 전환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오는 상황이다. 세계무역기구(WTO) 중심의 ‘자유무역주의’ 퇴조와 동맹국 간의 공급망 구축 전략인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이 맞물리며 수출 하락세가 장기화 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그간 수출에 유리하게 작용했던 고환율이 되레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고환율은 수출 경쟁력을 높여줬지만 이번에는 에너지 수입 가격 등의 급등으로 연결돼 무역수지 적자 폭을 키우는 실정이다. 자칫 우리 경제가 ‘무역수지 적자 폭 확대→원화 가치 추가 하락→수입물가 폭등’의 악순환에 갇힐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산업통상자원부가 1일 발표한 ‘2022년 6월 상반기 수출입 동향’ 자료에는 우리 경제의 위기 징후가 다수 포착된다.
상반기 무역적자는 103억 달러에 달해 25년여 만에 반기 기준 최대를 기록했다. 이런 추세라면 연간 기준으로도 역대 최대의 무역적자를 나타낼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지금까지 역대 최대 연간 무역적자 기록은 1996년의 206억 2000만 달러다.
2008년 이후 14년 만에 석 달 연속(4~6월) 무역적자 행진이 이어진 점도 부담이다. 이대로라면 5개월 연속 무역적자(2007년 12월~2008년 4월) 기록을 깨는 불명예를 안을 수도 있다.
수출 증가율 또한 눈에 띄게 감소하고 있다. 지난달 수출 증가율은 5.4%에 그쳤다. 산업부는 "지난달 중순 화물연대 운송 거부에 따른 물류난이 우리 업계의 생산·출하에 악영향을 주며 수출이 일부 위축됐다”며 “글로벌 금리 인상의 영향 등으로 글로벌 경기 둔화가 관측되는 가운데 주력 품목인 자동차나 기계 등의 수출이 감소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수출의 25%를 차지하는 중국과의 무역이 흔들리고 있는 점 역시 불안 요소다. 지난달 대(對)중국 수출액은 중국 내 봉쇄령과 경기 둔화 요인이 복합적으로 맞물리며 전년 동기 대비 0.8% 줄었다. 지정학적 리스크 또한 대중 무역 관련 변수다. 실제 중국 공산당 기관지 환구시보는 한국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연대를 강화하는 것에 대해 “불가피한 대가를 치르게 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특히 무역수지가 악화하면서 경상수지도 불안하다. 해외 관광 등이 크게 늘어날 경우 서비스·본원소득수지까지 포함하는 경상수지가 적자를 나타낼 가능성도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경상수지와 재정수지 모두 적자를 기록하는 ‘쌍둥이 적자’가 1997년 이후 25년 만에 현실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내놓는다.
전문가들은 무역수지 악화 기조를 단기간에 뒤집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미국이 계속 금리 인상을 단행 중이어서 달러화는 강세가 되고, 결국 한국의 수입물가는 오를 수밖에 없다”며 “공급 쪽에서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데 자원 외교 등에 집중하며 원자재를 싸게 들여오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실장은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하반기에는 수출 증가율이 마이너스를 기록할 수도 있다”며 “경상수지는 서비스나 소득 등에서 어느 정도 받쳐줄 수 있기 때문에 연간 적자를 기록할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무역수지 적자는 확실해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