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상반기 무역적자가 역대 상반기 기준 최고치인 103억달러를 기록했다. 올 상반기 수출액이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지만 석유나 액화천연가스(LNG)와 같은 수입에 의존하는 에너지원 가격이 급등하며 적자 기록이 불가피 했다. 재계에서는 올 하반기 대기업 수출 증가율을 0.5% 수준으로 전망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4년 만에 연간기준 무역적자 기록이 확실시 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올 상반기 수출이 15.6% 증가한 3503억달러를, 수입은 26.2% 늘어난 3606억달러를 각각 기록했다고 1일 밝혔다. 이에 따라 올 상반기 무역수지는 103억 달러 적자 전환해 역대 상반기 기준 최대 적자를 기록했던 1997년(91억6000만 달러)의 기록을 넘어섰다.
무역수지와 관련한 전체적인 상황이 좋지 않다. 국내 무역수지는 지난달 무역적자로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 이후 14년만에 석달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6월에는 수출증가율(5.4%)도 둔화돼 16개월만에 처음으로 수출증가율이 한자릿수에 머물렀다.
올 하반기 무역수지 반등도 쉽지 않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2022 하반기 수출 전망’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올 하반기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평균 0.5% 증가하는 데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1년전 대비 2배 이상 치솟은 유가 등 에너지 가격은 여전히 고공행진을 벌이고 있다.
이창양 산업부 장관은 “에너지 가격 급등에 따른 수입급증으로 연달아 적자가 발생했으며 글로벌 성장세 둔화와 공급망 불안정 심화 등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며 “여름철 에너지 수요확대와 고유가 추세가 맞물리며 무역수지 적자 지속 우려가 커지고 있어 리스크 관리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버팀목 역할해주던 수출.. 이번엔 고환율에 발목
한국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해주던 수출이 무너지고 있다. 지난달 수출 증가율은 16개월만에 처음으로 한자릿수를 기록한데 이어 글로벌 경기 악화로 올 하반기 마이너스로 전환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세계무역기구(WTO) 중심의 ‘자유무역주의’ 퇴조와 동맹국 간의 공급망 구축 전략인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이 맞물리며 수출 하락세가 장기화 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매 경제위기 때 마다 한국경제의 구원투수로 등장했던 고환율은 되레 한국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당시 고환율은 한국의 수출경쟁력을 높여줬지만, 이번에는 에너지원 수입 가격 급등으로 이어져 무역수지 적자폭을 키우는 역할을 한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정세변화에 따른 공급부문의 위기를 무역수지 악화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지만, 적절한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한국경제가 무역수지 적자폭 확대로 원화가치가 추가로 하락하고 다시 수입물가가 폭등하는 ‘악순환의 고리’에 갇혔다는 분석마저 나온다.
산업부가 발표한 ‘2022년 6월 상반기 수출입 동향’ 자료에는 한국경제의 위기 징후가 다수 포착된다.
가장 눈에 띄는 위기 징후는 무역수지다. 올 상반기 한국은 103억에 달하는 무역적자를 기록해 1997년 기록한 상반기 기준 최대 무역적자(91억6000만 달러) 기록을 뛰어넘었다. 석탄이나 가스 등 에너지원 가격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코로나19 관련 수요폭발 등이 복합적으로 맞물리며 최근 1년새 2배 이상 급등했다.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에 대한 원인이 1970년대 ‘오일쇼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대비 훨씬 다층적이라는 점에서, 무역수지 적자 행진이 상당기간 이어질 것이란 우려까지 나온다.
이 때문에 연간 기준으로도 역대 최대 무역적자를 기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금까지 기록한 역대 최대 연간 무역적자 기록은 1996년의 206억2000만 달러다. 1996년 당시 무역적자 상황에서도 ‘시장평균환율제도(일일 환율 변동폭을 10% 내외로 제외한 제도)’를 유지하느라 외화를 쏟아붓느라, 결국 이듬해 국제통화기금(IMF)에 외화를 빌리는 상황에까지 놓이게 된다.
무역적자 추세도 2008년 이후 14년만에 석달 연속 이어지고 있다. 이 같은 추세라면 2000년대 기준 최대 무역적자 연속행진 기록을 깨트릴 수 있다. 2000년대에는 2007년 12월부터 2008년 4월까지 기록한 ‘5개월 연속’ 무역적자가 최대 연속 기록이다.
25년만에 ‘쌍둥이 적자’ 현실화 되나
여기에 무역수지 악화로 국가 간 상품·서비스 거래액 등을 포괄한 ‘경상수지’ 또한 연간 적자로 전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4월 한국의 경상수지는 24개월 만에 마이너스로 전환해 8000만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여기에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통합재정수지는 2019년 적자로 돌아선 후 올해도 연간 적자가 예상된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경상수지와 재정수지가 모두 적자를 기록하는 ‘쌍둥이 적자’가 1997년 이후 25년만에 현실화 될 것이란 우려를 내놓는다.
수출 증가율 또한 눈에 띄게 감소 중이다. 지난달 수출 증가율은 5.4%로 2021년 2월 기록한 9.3%이후 16개월만에 한자릿수를 기록했다. 올해 월별 수출 증가율은 2월(20.8%) 이후 3월(18.8%)과 4월(12.9%) 계속 줄었으며, 조업일수가 전년 대비 이틀 늘었던 5월에만 21.3%로 껑충 뛰었다가 6월에 다시 고꾸라졌다. 산업부는 이에 대해 “지난달 중순 화물연대 운송거부에 따른 물류난이 우리 업계 생산·출하에 악영향을 주며 수출이 일부 위축됐다”며 “글로벌 금리 인상 영향 등으로 글로벌 경기 둔화가 관측되는 가운데 주력품목인 자동차나 기계 등의 수출이 감소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한국 수출의 25%를 차지하는 중국과의 무역이 흔들리고 있는 점도 불안 요소다. 지닌달 대(對) 중국 수출액은 중국내 봉쇄령과 경기 둔화 요인이 복합적으로 맞물리며 전년 동기 대비 0.8% 줄었다. 올 4월 대 중 수출증가율 또한 18개월만에 마이너스를 기록하기도 했다. 대 중 무역적자 규모도 확대되고 있다. 28년간 줄곧 흑자였던 중국과의 교역에서 5월(-11억달러)에 이어 6월(-12.1억달러)에도 적자를 냈다.
지정학적 리스크 또한 대 중국 무역관련 변수다. 실제 중국 공산당 기관지 환구시보는 한국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와 연대를 강화하는 것에 대해 “불가피한 대가를 치르게 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무역수지 악화 기조를 단기간에 뒤집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한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미국이 계속 금리인상을 단행 중이라 달러화는 강세가 되고, 결국 한국의 수입물가는 오를 수밖에 없다”며 “결국 공급 쪽에서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데, 자원외교 등에 집중하며 원자재를 싸게 들여오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실장은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하반기에는 수출 증가율이 마이너스를 기록할 수도 있다”며 “경상수지는 서비스나 소득 등에서 어느정도 받쳐줄 수 있기 때문에 연간 적자를 기록할 지 분명치 않지만, 무역수지 적자는 확실해 보인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