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총리실

공염불 그친 '일자리 22만개 약속'…"관제정책의 예견된 결말"

[청년희망온 사업 중단]

■ 숫자놀음 비판에 전격 철회

삼성 4만명 계획후 3만명 추가

정부 압박에 무리한 목표 설정

경기침체 상황서 기업부담 가중

정부 '고용계획 존중' 방침 선회

수도권·지방대에 대거 재정투입

반도체 등 첨단산업 인재육성 집중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청와대에서 열린 ‘청년희망 온(ON) 참여 기업 대표 초청 오찬 간담회’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이날 간담회에는 최정우(왼쪽부터) 포스코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구현모 KT 대표이사가 참석했다. 연합뉴스문재인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청와대에서 열린 ‘청년희망 온(ON) 참여 기업 대표 초청 오찬 간담회’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이날 간담회에는 최정우(왼쪽부터) 포스코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구현모 KT 대표이사가 참석했다. 연합뉴스






삼성전자가 지난해 9월 정부와 ‘청년희망 온(ON) 프로젝트’ 파트너십을 맺고 청년 일자리 3만 개를 창출한다고 발표했다. 당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파트너십 체결 현장에 직접 나와 김부겸 전 국무총리를 만났는데 삼성전자로서는 정부 여당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8월에 발표했던 직접 채용(4만 명) 이외에 ‘C랩 아웃사이드, 스마트공장, 지역청년활동가 지원 사업’ 등을 통해 연간 1만 개, 3년간 총 3만 개의 청년 일자리 창출 효과를 내겠다고 약속했다. 이를 두고 고용 계획을 이미 발표했는데 정부 시책에 협조하기 위해 3만 명의 숫자를 더 끌어내야 했다는 뒷말이 나오기도 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관제 일자리 정책이 넘쳐났던 게 사실이고 그게 민간 부문까지 확대됐었다”면서 “경쟁적으로 숫자를 제시하고 그것을 확약받는 것이 과연 지금 시대에 맞는 정책인지 의아할 정도였다”고 지적했다. 무턱대고 늘렸던 공공 부문 채용, 세금으로 만들어낸 일자리에 이어 민간 기업들이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고용 계획을 발표하도록 하는 암묵적 압박이 너무 시대에 뒤처진 정책이었다는 얘기다.

◇일자리 22만 개 약속해도 결국 ‘숫자 놀음’=정부와 기업이 지난해 9월부터 ‘청년희망 온 프로젝트’를 통해 약속한 일자리는 22만 2000개에 달한다. 이 가운데는 정부의 압력으로 불필요한 인원을 늘리거나 무리하게 끌어올려 향후 발표 내용을 지키기 어려운 경우도 적지 않다.

KT는 청년희망 온 프로젝트에 가장 먼저 참여했고 채용 계획을 기존보다 2배로 확대하는 내용을 내놓았다. 정부의 통신비 인하 방침으로 인력을 크게 늘릴 수 없는 상황에서도 무리하게 고용 증대안을 내놓았다는 평가다. SK그룹 역시 당초 연간 6000명 수준의 채용 계획을 잡았는데 정부 제안으로 계획을 매년 9000명까지 늘리기로 했다. 표면적으로는 인재 육성과 사회적 가치의 중요성을 반영했다고 밝혔지만 내부적으로는 부담스러울 수준까지 끌어올린 수치라고 보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참여 기업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인 4만 6000개의 일자리 창출을 공언했다. 미래 사업인 로보틱스·수소에너지·자율주행 등 신사업 부문에서 신규 채용을 대폭 늘리기로 했는데 워낙 규모가 큰 만큼 채용 부담이 적지 않다는 평가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포스코·LG 등도 기존 계획보다 채용 규모를 늘리면서 다른 부문의 지출 조정 등을 우려하는 상황이다. 특히 올 들어 금리 인상과 글로벌 경기 침체 등이 예상되면서 이미 발표한 추가 채용 규모를 지킬 수 있을지 우려하는 분위기도 적지 않다.



한 대기업 인사 부문 관계자는 “연간 필요 인원과 예산 등을 고려해 세운 계획에서 청년희망 온 프로젝트 참여로 늘어난 숫자가 있다”며 “올해와 내년 경기 침체, 임금 인상 압박 등 대내외 요인들을 고려하면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관련기사



◇민간 고용 압박 대신에 교육·인재 양성으로=김부겸 전 국무총리는 지난해 퇴임 전 가진 기자 간담회에서 청년희망 온 프로젝트와 관련해 “(재임) 1년간 내세울 수 있는 게 청년희망 온 프로젝트였다”며 “모든 네트워크를 동원해 차기 정부에 내용을 상세히 전달할 작정”이라며 애착을 보였다. 이어 “한 정권에서 생색내고 할 문제가 아니다”라면서 “다음 정부에서도 이어지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이 때문에 정보기술(IT) 기업 가운데 참여하지 않았던 네이버·쿠팡·엔씨소프트·넥슨 등의 합류 가능성도 제기됐다. 또 10대 그룹인 롯데·현대중공업·한화·GS·신세계 등도 동참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왔다.

하지만 정부가 기업의 팔을 꺾어 ‘고용 숫자 늘리기’에 치중하고 있다는 비판 목소리가 커지자 정부는 기업의 고용 계획을 존중하기로 방침을 바꿨다.

윤석열 대통령은 앞서 110대 국정과제로 규제 개혁을 내세웠는데 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핵심 규제를 모두 제거하겠다는 내용이다. 이 같은 새 정부의 방침이 반영되면서 정부는 청년희망 온 프로젝트를 중단하고 인재 양성과 교육·훈련에 집중하기로 했다.

총리실 관계자는 “청년 종합 대책은 계속 유지하지만 고용 부문에서는 변화가 생긴 것”이라며 “교육과 훈련, 인재 양성에 더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이에 수도권과 지방 대학에서 첨단산업 분야 인재를 대거 육성하기로 했다. 한덕수 국무 총리는 이와 관련해 지난달 SK하이닉스를 방문한 자리에서 “인재는 자본이나 기술보다 덜 유동적이어서 우리가 가장 오랜 기간 활용할 수 있다”며 “수도권과 지방 대학에 재정을 투입하고 획기적으로 첨단산업 분야 인원을 육성하겠다”고 설명했다. 기업이 필요한 분야의 인재를 키우기 위해 대학에 자금을 대부분 지원하는 방식의 계약학과 대신에 정부가 직접 나서 필요 인재 육성을 지원하겠다는 의미다.

또 직업 경험, 직무 역량 강화 훈련, 공정 채용 등 청년이 원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청년도약 프로젝트’ 등을 통해 청년 고용을 확대할 방침이다.


강동효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