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나흘 뒤인 2월 28일 영국의 셸이 러시아 극동 지역 석유·천연가스 개발 사업인 ‘사할린-2’ 프로젝트에서 철수를 선언했다. 큰 사업 기회를 잃는 고통스러운 결정이었지만 셸은 자유세계를 침략한 러시아를 응징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망설이지 않고 사할린-2 출자 지분 27.5%를 버렸다.
사할린-2는 러시아 사할린 섬 전역에서 진행 중인 1~8구역 유전·천연가스전 개발 프로젝트 중 하나다. 사할린 대륙붕 지역에는 풍부한 석유 자원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20세기 초부터 알려졌으나 방치돼 있다가 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가 외국 자본을 도입해 생산 플랜트와 파이프라인 등의 건설에 착수했다. 사할린~하바롭스크~블라디보스토크로 이어지는 사할린-2의 지분은 러시아 국영기업인 가스프롬이 50%를 갖고 나머지는 셸(27.5%)과 일본 미쓰이물산(12.5%), 미쓰비시상사(10%) 등이 분점하고 있다.
1999년부터 가장 먼저 원유 생산을 시작한 사할린-2에서 나오는 천연가스는 한국·중국·일본·대만 등 아시아 국가들에 주로 공급된다. 이 가운데 일본으로 가는 물량이 전체의 60%를 차지한다. 일본 경제산업성에 따르면 사할린-2에서 수입한 액화천연가스(LNG)는 일본 전력 공급량의 3%에 해당한다. 이런 제약 때문에 일본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사업 철수를 선언한 셸과 달리 사할린-2에 매달려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최근 ‘외국의 비우호적 행동에 관한 연료·에너지 분야 특별 경제 조치에 관한 법안’에 서명했다. 사할린-2에서 일본 기업들을 배제하는 수순에 돌입한 것이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4일 도쿄 거리 연설에서 “(러시아산 원유를) 사지 않는 구조를 만들겠다”고 외쳤지만 때늦은 감이 있다. 러시아 에너지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구조에서는 일본도 선택의 폭이 좁기 때문이다. 가치를 공유할 수 없는 나라와의 에너지 협력이 훗날 어떤 대가를 요구하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우리도 에너지·식량 안보 문제에서 흔들리지 않으려면 가치 지향점이 다른 중국·러시아에 대한 의존을 줄여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