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김구태의 뇌과학]뇌는 독서할수록 똑똑해진다

◆김구태 한국뇌연구원 연구원

독서는 긴 집중력 필요한 함축적 매체

뇌 속 정보 활성화시켜 창의성 극대화

직관적 지식에 매몰된 영상의 시대 속

뇌를 단련시키는 독서 가치 더욱 빛나





독서는 아직도 중요한가.

필자는 요사이 알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많은 경우 유튜브나 블로그와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정보를 찾는다. 온라인은 음식 레시피부터 맛있는 음식점, 심지어 투자 방법까지 알고 싶은 정보를 즉각적으로 쉽게 구체적으로 알려준다. 이 같은 세상에서 독서가 정말 중요한 걸까. 필자의 대답은 “그렇다”이다. 이유를 알기 위해서 일단 우리 뇌가 학습하는 방식을 살펴보자.



학습의 진짜 실력을 증진시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어려운 공부를 하는 것이다. 이는 학습심리학계에서 일종의 법칙처럼 받아들여진다. 다음 주 중요한 발표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우리는 슬라이드 노트에 무엇을 말할지 대본을 써놓고 외우기 시작한다. 많은 사람은 대본을 여러 번 읽고 또 읽는다(반복 학습). 반면 학습의 원리에 감이 있는 소수의 사람은 일단 노트를 한번 읽고 슬라이드를 켜서 바로 발표 연습을 한다. 물론 처음에는 무척이나 어렵지만 외워질 때까지 반복한다(회상 기반 학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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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학습 방법 중 회상 기반 학습이 훨씬 어렵고 일정 수준으로 학습될 때까지의 시간 역시 많이 필요하다. 그래서 사실 많은 사람은 쉬운 길, 즉 반복 학습의 방법을 선택하곤 한다. 그러나 수십 년간의 학습에 대한 연구들은 어려운 방법, 즉 회상 기반 학습이 쉬운 반복 학습에 비해 질적으로 훨씬 훌륭한 학습 효과를 가져옴을 증명해왔다. 구체적으로 회상 기반 학습은 반복 학습에 비해 △망각을 더 효과적으로 방지하고 △학습 내용을 더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게 하며 △놀랍게도 기존의 학습 내용들 사이의 새로운 연관을 생성시켜 ‘새롭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만들어내게 한다. 회상 기반 학습뿐이 아니다. 검사 효과(testing effect), 간격 학습(spaced learning) 등 심리학이 찾아낸 여러 효과적인 학습법들의 본질은 모두 학습을 어렵게 만드는 것에 있다.

어려운 학습은 어떻게 학습의 이점을 누리게 되는 걸까. 어려운 학습을 할 때 우리의 두뇌는 어려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뇌 전반에 걸쳐 저장된 수많은 배경지식을 활성화시킨다. 또 이를 학습해야 할 내용과 비교·검토하는 복잡하고 ‘적극적인’ 정보 처리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러한 ‘깊이 있는 처리 과정’을 통해 학습한 내용은 더 효과적으로 조직화되고 더 풍부한 연결성을 갖는 형태로 뇌에 저장된다. 그리고 이러한 풍부한 연결성이 사고의 유연성과 창의성의 기반이 된다.

책은 주로 텍스트를 매개로 정보를 전달하고 이 때문에 책은 영상 매체와 차별되는 여러 특성을 갖게 된다. 일단 글자라는 시각적 상징을 음성으로, 이를 다시 의미로 전환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글을 능수능란하게 읽는 데는 십수 년, 혹은 평생의 연습이 필요하다. 또한 책은 영상에 비해 내용을 훨씬 더 깊이 있게 다루며 이를 위해서 복잡한 위계적인 구조를 갖는 경우가 많다. 지면의 제한 때문에 높은 함축성을 가질 뿐만 아니라 글을 읽고 하나의 응집된 아이디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매우 긴 집중력이 필요하다. 한마디로 말하면, 독서에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일정 수준의 이해를 위해서는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는 독서의 속성이 역설적으로 뇌의 학습 시스템에는 더할 나위 없는 장점으로 작용한다. 독서할 때 뇌는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상이한 기능을 갖는 뇌 영역들을 동시에 활성화시키고 이들을 협응시킨다. 또한 독서 중에 뇌 전반에 저장된 배경지식들이 재활성화되고 이들은 독서를 통해 끊임없이 업데이트된다. 이러한 노력을 요하는 적극적인 정보 처리 과정을 통해서 우리의 지식 체계는 더 정교하게 조직화되고 더 유연해지고 더 창발적인 속성을 지니게 된다. 한마디로 독서는 우리의 뇌를 매우 효과적으로 똑똑하게 한다. 영상의 시대에도 독서는 여전히 중요하다. 아니, 많은 사람들이 직관적 지식에 매몰돼 있을 때 독서하는 사람은 오히려 더 밝은 빛을 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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