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와 배터리 시장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글로벌 투자 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합작 기업인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는 미국 반도체 기업 글로벌파운드리스와 공동으로 57억 유로(약 7조 5500억 원)를 투자해 프랑스 그르노블에 반도체 제조 공장을 설립하기로 했다. 이에 앞서 독일은 3월 미국 인텔의 반도체 공장을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인텔은 이곳에 170억 유로(약 22조 5000억 원)를 투자한다. 배터리 분야에서는 중국의 투자 공세가 두드러진다. 중국이 올 상반기 착공한 배터리 관련 공장 프로젝트는 108개로 여기에는 114조 원이 투입된다.
유럽이 반도체 투자에 나서는 것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반도체 품귀 현상이 빚어지면서 자체 조달의 필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한국과 대만 등에 의존해온 데서 벗어나 반도체 자립 쪽으로 방향을 전환한 것이다. 중국이 반도체 굴기를 내세워 바짝 쫓아오는데 유럽마저 경쟁 대열에 가세한다면 ‘반도체 코리아’의 입지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배터리 상황은 더 심각하다. 1~5월 글로벌 전기자동차 배터리 사용량에서 LG에너지솔루션 등 국내 3사의 점유율은 중국 기업의 고성장에 밀려 9.1%포인트 하락했다. LG엔솔은 영업 환경 악화를 이유로 미국에 짓기로 한 배터리 공장의 착공을 보류했다.
반도체와 배터리 같은 첨단산업은 잠시라도 투자를 게을리하는 순간 후발 국가에 선두를 내주고 시장에서 도태될 수 있다. 초격차 기술로 시장을 확실하게 주도하려면 기업이 투자를 확대할 수 있도록 정부와 정치권이 나서 불합리한 규제를 없애고 파격적인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 등 총력 지원 체제를 가동해야 한다. 당장 수도권 대학 정원 확대 등 알맹이가 빠져 ‘무늬만 특별법’ 소리를 듣는 국가첨단전략산업특별법부터 뜯어고치는 데 여야가 힘을 모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