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기여한 바는 적지 않다. 트럼프가 인도태평양 전략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아시아 재균형’ 전략을 대체하는 아시아 전략으로 채택하면서 미국은 큰 전략의 틀 안에서 아시아 정책을 다시 추진할 수 있게 됐다. 트럼프는 71년 역사의 미국 태평양사령부(PACOM)를 인도태평양사령부(INDOPACOM)로 전환하며 인도태평양을 통합된 군사전략의 공간으로 상정했고 이에 의거해 미국의 역내 군사안보 전략 체계를 재정비하기 시작했다. 이런 맥락에서 쓰나미에 대처하기 위해 결성됐던 쿼드(QUAD)를 안보협의체로 진화시키기도 했다.
트럼프는 인도태평양 전략 추진을 위한 법적·제도적 토대를 마련했다. 일례로 인도태평양의 개도국 투자와 개발기구 발족을 위해 2018년 ‘빌드법’을 초당적으로 통과시킨 것을 들 수 있다. 이 빌드법은 현재 인도태평양 전략 중 개발협력(ODA) 사업의 법적 근거가 되고 있다. ‘아시아안심법’과 ‘인도태평양협력법’도 채택했는데 이 법은 역내 동맹 및 준동맹 국가와의 협력 강화와 안보 네트워크 구축의 법적 근거를 제공한다. 인도태평양의 군사안보 전략 추진을 위한 예산을 2021년 회계연도 국방수권법에 반영시켜 통과시키기도 했는데 이 법안에는 ‘태평양억제구상(PDI)’ 추진을 위한 예산이 책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트럼프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많은 한계를 드러냈던 것 역시 사실이다. 조지프 나이 교수는 국제 관계에서 군사력 같은 강성 권력에 의존한 강압적 수단보다 연성 권력의 ‘매력’을 통해 상대 국가의 동의를 자발적으로 유도하는 것이 더 성공적일 수 있다고 역설했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이야말로 역내 국가와 제도에 관여해 다양한 역내 행위자의 참여를 자발적으로 유도할 수 있을 때 성공 가능한 전략이다. 이런 관점에서 트럼프의 ‘신고립주의’ 외교 노선은 태생적으로 인도태평양 전략의 본질과 상호 모순되는 성격을 띠고 있었다. 트럼프의 배타적 미국 우선주의는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한 역내 국가들의 공감과 지지를 유도하는 데 실패했다.
인도태평양 전략의 목적은 기본적으로 역내에서 규범과 규칙에 의거한 자유주의 질서를 유지, 강화하는 것이다. 미국이 솔선수범해서 규범과 규칙을 지키며 ‘매력지수’를 끌어올렸어야 했지만 트럼프는 미국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창출하고 관리, 관여해온 자유주의 국제 질서와 제도를 무시하고 전통적인 미국의 리더십을 방기했다. 역내 국가들은 미국이 규범 지킴이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규칙에 의거한 지역 질서를 수호, 강화하겠다는 의지가 결여된 것으로 인식했다. 결국 트럼프는 인도태평양 전략 성공에 필요한 ‘담론 장악 능력’을 회복하지 못했고 지역 국가의 호응 유도에 실패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전략의 다면성을 확충하고 동맹뿐 아니라 미국 고유의 외교력,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 제도 같은 연성 권력 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트럼프의 전략에 비해 세련된 모습으로 가동되고 있다. 미국의 아태 동맹과 유럽 동맹은 인도태평양 지역에 대한 관여를 강화하며 바이든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일단은 호응하는 분위기다. 문제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지역에 대한 경제적 관여 정책이 성공할지 여부다. 오바마의 아시아 재균형 전략에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가장 중요한 전략 기제였는데 이는 TPP가 아시아 재균형의 ‘총아(寵兒)’라는 평가가 나왔던 이유다. 트럼프의 TPP 가입 철회 결정은 바로 아시아 재균형 전략의 공식 폐기로 이어졌지만 TPP는 일본의 노력으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으로 부활했다. 그러나 바이든은 국내에서 인기가 없는 CPTPP에 참여하기보다 의회의 비준이 필요 없는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를 추진하고 있고 한국을 포함한 12개국은 IPEF 동참 의사를 밝혔다. 그럼에도 ‘시장 개방’이라는 주요 의제가 빠진 IPEF가 미국의 인도태평양 경제적 관여 정책의 핵심 기제가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