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해외 칼럼]민주당은 생산적 정당으로 거듭나야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CNN‘GPS’호스트

'재건 계획' 놓고 수개월째 입씨름

일사불란한 업무수행 역량 사라져

공화 공세에 반격하는 법 배우고

제대로 일하는 黨 모습 어필해야

파리드 자카리아파리드 자카리아




공화당의 잠룡으로 통하는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가 얼마 전 필자에게 e메일 한 통을 보내왔다. 아마도 필자를 비롯해 수천 명에게 동시에 띄운 e메일일 것이다. 그의 e메일은 “지금 미국은 거대한 위협에 직면해 있다”로 시작된다. 필자는 그가 치솟는 물가와 고공 행진 중인 가스값, 침체 위기에 처한 경제 상황을 중심으로 공세를 펼칠 것이라 짐작했다. 그러나 e메일 어디에도 민생 문제는 언급되지 않았다. 대신 문제의 e메일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과 나라를 전혀 알아보지 못할 만큼 망가뜨리려는 적이 어둠 속에서 떠올라 우리를 겁박하고 있다”는 경고로 채워졌다. 그가 말하는 적의 정체는 민주당이다.



디샌티스의 움직임은 공화당 지지 기반의 비위를 맞추고 2016년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후보 지명을 가능하게 만든 이슈들을 선점해 재출마를 꿈꾸는 전 대통령을 측면에서 포위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최근 공화당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실시된 뉴햄프셔 여론조사는 차기 대권 주자로 디샌티스가 트럼프와 거의 대등한 지지를 얻고 있음을 보여준다. 트럼프에 비해 지명도가 떨어지는 플로리다 주지사가 대선 풍향계로 일컬어지는 뉴햄프셔주에서 전임 대통령을 따라잡았다는 얘기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보면 디샌티스의 움직임은 민주당 내부의 심각한 취약점을 간파한 공화당의 선거 전략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최근 뉴욕타임스의 포괄적 여론조사 역시 이 같은 견해를 확인해준다. 여론조사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기사를 작성한 데이비드 레온하트는 “민주당의 좌익 성향 의원들과 유권자들은 인플레이션처럼 대다수 미국인들이 일상생활에서 겪는 민생 관련 이슈보다 국론 분열을 야기하는 문화적 쟁점에 초점을 맞추는 듯 보인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이 상당 부분 좌측으로 이동했고 많은 문화적 이슈에 대해 대중과 분리됐음을 보여주는 증거는 차고 넘친다. 이제 민주당은 기존의 노선을 교정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같은 교정을 확실하고 강압적이며 반복적으로 해야 한다. 공화당은 몇 안 되는 민주당 좌파의 말을 무기화하고 그들을 민주당의 공식 얼굴로 낙인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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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은 공화당의 공세에 반격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공화당 우세 주에서 통과된 극단적인 낙태법을 조명하고 그것을 공화당과 연결시켜야 한다. 예컨대 오클라호마는 이제 낙태를 금지한다. 일단 임신을 하면 거의 예외 없이 낙태가 법적으로 불가능해진다. 미시시피주의 경우 불법 낙태 수술을 한 의사는 최고 10년간의 징역형에 처해진다.

민주당의 또 다른 취약점은 업무 수행 역량이다. 민주당은 권력을 잡았을 때조차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다. 공화당 기구들의 상당수가 트럼프를 경멸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단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그의 어젠다를 법제화하고 물 샐 틈 없이 뒤를 받쳐주는 등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반면 민주당은 코로나19 구제안과 기반 시설 구축안 등 그들이 통과시킨 2개의 중요 법안을 대중의 머릿속에 각인시키지 못했고 세 번째 중요 법안인 ‘더 나은 재건 계획’을 놓고 수개월 동안 입씨름을 벌였다.

언제부터인지 미국, 특히 민주당 강세 지역인 블루 스테이트에서 무엇인가 건설하기가 대단히 어려워졌다. 2009년 또 하나의 중요 기반 시설 관련 법안을 통과시킨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곧 착수 가능한 공공 프로젝트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명언을 남겼다. 뉴욕타임스의 컬럼니스트인 에즈라 클라인이 지적하듯 숱한 인허가, 사업 계획 재검토와 지연이 정상적인 승인 과정의 일부가 돼버렸다. 이것이 대규모 공공 프로젝트를 지연시키거나 아예 망쳐놓는다. 민주당은 그들 자신과 이익 단체들의 아이디어로 인해 마비됐고 실제로 일을 처리할 수 있는 능력자도 없는 듯 보인다.

돈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필자가 거주하는 뉴욕의 경우를 살펴보자. 2200억 달러에 달하는 뉴욕주의 예산은 눈이 휘둥그래질 정도다. 플로리다주의 주민 수는 뉴욕주에 비해 200만 명가량 많지만 지출은 절반에 불과하다. 뉴욕시의 예산은 1000억 달러로 일리노이주 전체 예산의 2배가 넘지만 인구는 일리노이에 비해 오히려 50%가 적다. 뉴욕은 조세 부담이 가장 높은 주다. 세율 역시 고율의 누진세다. 뉴욕시 최상위 1%에 속한 고수입자가 전체 세수의 40% 이상을 담당한다. 그럼에도 뉴욕의 기반 시설과 서비스는 구차스럽다.

이건 인식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의 문제다. 민주당은 제대로 일을 처리하고 제반 시설을 건설하며 정부가 일반 대중을 위해 일하도록 만드는 정당으로 돌아가야 한다. 대다수의 미국인에게 정당명보다는 제대로 일을 하는 정당이냐, 아니냐가 훨씬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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