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기업 ‘줄도산’ 대비책으로 회생법원 추가 신설을 추진 중이지만 실제 실현되기까지는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된다. ‘사법농단’ 사건의 여파로 법원행정처의 대관 업무가 중단되는 등 사법행정 체계 마비가 장기간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원행정처 자문기구인 회생·파산위원회가 지난해 말에 이어 지난달 대법원에 수도권 밖 회생법원 추가 신설을 재차 권고했다. 하지만 이를 주도해야 할 법원행정처는 선뜻 나서기 힘든 상황이다.
현재 도산전문법원은 2017년 3월 신설된 서울회생법원이 유일하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인 2016년 권성동 국민의힘 대표 직무대행(당시 새누리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새로 생겼다. 2호 회생법원의 경우도 대법원장 지휘를 받아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법원행정처가 국회에 법원조직법, 각급 법원의 설치와 관할구역에 관한 법률(법원설치법) 등 개정을 설득해야 하지만 현실은 쉽지 않다. 사법농단을 계기로 법원행정처가 사법행정권 남용 조직으로 낙인찍히면서 국회와 대법원 간 ‘핫라인’이 끊긴 탓이다. 사법농단은 법원행정처가 양 전 대법원장의 숙원사업인 상고법원제도를 실현시키기 위해 일제 강제징용 소송 등 재판에 개입하고 박근혜 정부 및 국회에 입법 로비를 한 사건이다. 양 전 대법원장의 후임자인 김명수 대법원장마저 사법 개혁의 일환으로 법원행정처 폐지를 추진하면서 행정처의 역할은 더 쪼그라들었다. 이 같은 배경에서 회생법원 추가 설립 권고가 수년째 이어졌지만 대법원에서는 신설 지역 내부 검토 작업만 이뤄지고 있다.
법원 관계자는 “사법농단 이후로 행정처가 전면에 나설 수 없게 됐다”며 “설상가상으로 공무원 정원을 매년 1% 줄이겠다는 정부가 법원 신설에 협조하겠느냐”고 말했다.
서울회생법원이 이달부터 주식·암호화폐 손실금을 개인회생 변제금 산정에서 제외하면서 지역 간 형평성 논란이 일었지만 법원행정처가 중재하지 못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행정처가 일각의 지적에 따라 각 지방법원에 서울회생법원 준칙에 따르도록 지침을 내릴 경우 사법농단 때처럼 직권남용, 재판 개입 논란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이다.
법조계는 줄도산 문제가 심각한 상황임에도 법원행정처가 사법농단의 그늘에 갇혀 도산 절차 개선에 적극 나서지 못하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한 부장판사는 “앞으로 우려했던 줄도산 사태가 벌어지면 그때는 정말 손쓸 수 없게 된다”며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경제를 뒤흔드는 뇌관이 터질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