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간 채권단 관리 체제가 유지되고 있는 대우조선해양을 두고 시장에서는 산업은행에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동걸 전 회장의 산은이 산업과 시장의 흐름보다 비용에 방점을 둔 구조 조정 방식만을 고집하면서 대우조선해양 구조 조정의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역시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 노동조합을 의식하며 대우조선해양에 ‘인공호흡’만 해왔다. 산은이나 전 정부 모두 정밀한 진단과 이를 기반으로 한 해결책을 회피하며 대우조선해양은 매각에도 실패하고 구조 조정에도 실패했다.
25일 산은에 따르면 대우조선해양의 경쟁력 강화 방안을 두고 경영 컨설팅이 진행되고 있다. 당초 컨설팅은 3월 말 완료됐으나 하청 노조의 파업으로 회사의 재무 상황이 바뀌면서 다시 컨설팅이 진행 중이다. 산은은 컨설팅 결과와 함께 대우조선해양의 자체 쇄신안에 따라 매각 방식 등을 결정할 계획이다. 다시 말해 대우조선해양의 생존이 결국 대우조선해양에 달린 셈이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산은과 정부가 구조 조정에 대한 근본적 방향을 바꾸지 않는 한 대우조선해양이 단기간에 정상화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하청노조 파업 사태의 주요 원인이 된 인력 구조부터 개선해야 하는데 그간 산은과 정부가 이를 방치해왔다. 통상 산은은 공적 자금을 투입한 기업에 비용 절감을 요구하고 채권단 관리 체제에 들어간 기업들 역시 허리띠를 졸라매며 비용을 줄여나간다. 장기간 채권단 관리 체제에 있던 대우조선해양은 어렵고 위험한 업무를 하청·재하청에 넘기면서 비용을 줄여나갔고 이번 노사 갈등으로 이어졌다. 이 같은 다단계식 하청 구조에 대한 문제는 2016년에도 지적됐으나 당시 정부는 조선업을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지정해 실업급여를 확대하는 등 근시안적인 지원책을 도입하는 데 그쳤다. 산은이 비용 중심으로 구조 조정에 접근하고 정부가 근본적 대책 마련에 손을 놓으면서 그 직격탄을 대우조선해양이 맞은 셈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우조선해양이 오랜 기간 채권단 관리 체제에 있으면서 조직 문화가 공기업스럽게 변하며 누구도 노조에 싫은 소리를 못 하는 구조가 됐다”며 “결국 설계 등 핵심 인력은 임금도 올려주지 못하며 경쟁사에 빼앗기고 있다”고 말했다. 산은의 내부 통제도 헐거웠다. 2018년 대우조선해양 노사는 이면 계약으로 한 달 치 월급을 그냥 가져가기도 했다. 2013~2014년에는 6000억 원 적자였는데 9000억 원 흑자를 낸 것처럼 분식회계를 했다. 건조하던 해양 플랜트의 총예정원사를 적게 산정하는 수법이었다. 거짓으로 꾸민 재무제표를 근거로 임직원들은 대규모 성과급 잔치를 벌였다.
조선 업계에서는 산은이 2000년대 초중반 조선업 호황 당시 대우조선해양 매각을 담판 지었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창록 당시 산은 총재도 “내부적으로 대우조선해양의 매각 타이밍을 여러 각도에서 검토 중”이라며 “매각 이익 극대화를 위해 대우조선의 매각 타이밍을 저울질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때 노조에서 특정 기업으로의 일괄 매각을 반대한 데다 산은 역시 적극적으로 매각을 추진하지 못하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매각 시기를 놓쳤다. 이후 한화가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되고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부담에 매각 대금 분납을 요청했으나 산은이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서 매각이 무산됐다. 김영훈 경남대 조선해양시스템공학과 교수는 “2000년대 초중반 산은에서 원유를 다루는 업체 등을 검토해 (대우조선해양 매각을) 처리했어야 했다”며 “조선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고 자부한 산은이 시장 상황이 좋고 선박 수주가 잘되니 오판을 했다”고 지적했다.
산은과 정부가 구조 조정 과정에서 조선업에 대한 장기적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한 점도 문제로 손꼽힌다. 국내 조선업은 올 상반기에 세계 발주량 2153만 CGT(표준선환산톤수) 중 45.5%의 계약을 따내며 중국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그러나 저가 수주로 인한 출혈적 경쟁이 심한 데다 액화천연가스(LNG)선·컨테이너선 등 고부가 선박 수주에 대한 원천 기술력은 부족하다. 산은의 한 관계자는 “LNG선의 탱크 설계 기술만 해도 외국에 엄청난 사용료를 내며 쓰고 있다”며 “대우조선해양이 LNG선을 수주했다고 하나 사용료 등을 제외하고 나면 크게 이익을 보기 어려운 구조”라고 꼬집었다.
현재 국내 조선업이 부가가치가 높은 분야의 기술력을 확보하는 데 적극 투자하고 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대책은 전무하다. 이 과정에서 현 인력의 대규모 구조 조정이 동반되는 만큼 정부와 산은이 모두 외면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당시 독과점 논란이 제기됐으나 무리하게 현대중공업에 대우조선해양의 매각을 추진한 것도 이 같은 배경에서다. 이동걸 당시 산은 회장은 “승산이 50%는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번 해볼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는 판단”이라며 자신하기도 했다.
이 같은 산은과 정부의 구조 조정에 대한 접근 방식이 바뀌지 않는 한 대우조선해양 외에 남은 구조 조정 현안들도 매듭을 풀기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쌍용자동차의 경우 KG그룹이 최종 인수 예정자로 선정됐으나 연체이자율 조정 등 최종 인수까지 과제가 많다. KDB생명은 JC파트너스로의 매각이 무산된 후 금리 인상으로 지급여력(RBC)비율마저 하락해 향후 매각 작업에 진통이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