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도의 도발적 연출을 통해 개인의 사생활 침해와 내로남불식 태도, 이기심,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때문에 익숙해진 거리두기의 삶 등 현대 사회를 둘러싼 여러 문제를 제기하는 영화가 나왔다. 지난해 베를린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곰상을 탄 루마니아 출신 라두 주데 감독의 ‘배드 럭 뱅잉’이다. 주데 감독은 이 작품에서 무거운 주제의식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사실적 접근과 B급 블랙코미디가 공존하는 독특한 작품으로 만들어냈다.
영화는 시작과 동시에 한 부부의 성관계 장면을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영상의 주인공은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에 있는 명문학교 역사교사인 에미(카티아 파스카리우)와 그의 남편으로, 둘은 합의 하에 영상을 찍었지만 자신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인터넷에 퍼지면서 문제가 됐다. 동료 교사와 학부모가 품위 실추를 이유로 해고를 요구하며 에미가 출석한 가운데 회의가 열린다.
주데 감독은 영화를 3부로 나눠, 각각 다른 장르의 작품 세 편을 붙여 놓은 듯 이질적인 스타일로 연출한다. 1부 ‘일방통행’에서는 에미가 시내를 다니며 사람들을 만나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며 선처를 호소하는 모습을 다큐멘터리처럼 그렸다. 팬데믹 상황을 그대로 반영하듯, 사람들은 모두 마스크를 쓰고 다니며 카메라는 인물들을 먼 발치에서 바라본다.
2부 ‘일화, 기호, 경이에 관한 소사전’은 70여 단어를 아카이브 영상과 함께 새롭게 정의하며 인간의 위선과 폭력을 비판하고 현대 루마니아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판매, 구매’라는 단어를 띄운 후 대형마트에서 사람들이 예수가 부활하셨다는 찬송가를 부르는 영상을 보여주면서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이 더 직접적이고 열띠게 자신을 표현한다’고 말하는 식이다.
에미의 처분을 논의할 회의를 다루는 3부 ‘실천과 빈정거림’은 강한 B급 블랙코미디다. 회의에 출석한 에미와 그를 비난하는 학부모들의 모습은 중세 마녀사냥을 연상케 한다. 명문학교 답게 학부모들도 대부분 상류층으로, 에미가 교사로서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는 발언 내내 성차별, 인종차별 등 비뚤어진 의식을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1989년 무너진 차우셰스쿠 독재정권을 말로 비난하면서 행동으로는 답습하고 있다.
주데 감독은 “작품 속 사건과 일상은 우리의 권리와 자유, 디지털 세계 및 모호한 존재론적 특성 등 여러 측면과 맞물려 있다”며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을 위한 영화라고 말한다. 러닝타임 106분, 28일 개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