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글로벌 반도체 기업 투자 유치 경쟁에 참여하기 위한 발판 마련에 착수한다. 여당은 기업의 반도체 설비와 연구개발(R&D) 투자 혜택을 미국 등 경쟁국과 같은 수준인 최대 25%까지 확대하기로 뜻을 모았다. 미국 의회가 총 2800억 달러(약 365조 원) 규모의 반도체 산업 육성 법안을 통과시킨 것이 도화선이 됐다. 이를 계기로 국내에서도 기술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선진국 수준의 파격적인 지원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여론이 조성됐기 때문이다. 경쟁력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국회와 정부가 초당적 협의를 통해 반도체 산업 지원에 힘을 모아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본지 7월 28일자 1·3면 참조
◇세제 혜택 방향은=국민의힘 주도의 반도체산업경쟁력강화특별위원회는 2일 대기업의 반도체 설비 투자 혜택을 최대 25%까지 늘리는 내용을 담은 ‘반도체산업경쟁력강화법’을 발표했다. 이는 업계의 예상치를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다. 기존 6%에 불과하던 대기업의 세액공제를 기본 20%까지 늘렸고 중견기업과 중소기업에 대한 세액공제도 현행 8%, 16%에서 25%, 30%로 두 배 이상 확대했다. 추가분에 대한 공제 혜택도 기존 4%에서 5%로 1%포인트 올렸다. 기술 진입 장벽을 낮추고 재투자 유인을 높이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겠다는 목표다. 공제 기간도 2030년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특위는 막판까지 세액공제율을 놓고 고심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이 대규모 반도체 지원안을 통과시키면서 세제 혜택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전날 당정협의회 직전 비율을 높이기로 합의했다는 설명이다. 반도체특위를 이끈 양향자 위원장은 이날 서울경제와의 통화에서 “경쟁국들과 경쟁사들을 보면 우리가 어느 정도는 (세제 혜택 등을) 해야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출발선을 거기에 뒀다”며 “이제 필요한 곳에 재원을 넣어 나머지 비효율을 줄이는 연쇄적·긍정적 효과를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인프라 조성·인재 확보 대책은=특위는 원활한 사업 진행을 위해 반도체 특화단지 조성에 대한 정부의 권한을 확대하고 반도체 인재 양성을 위한 실질적인 지원 방안도 마련했다. 법안은 수도 및 전기 등 공기업 또는 공공기관에서 설치할 필요가 있는 기반시설에 관해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를 적용받을 수 있도록 예타 면제 범위를 확대하고 인허가 신속 처리 기한을 현행 30일에서 15일로 단축하도록 했다. 인재 양성을 위해서는 기업에서 운영하는 반도체 계약학과의 운영비와 연구인력 개발비를 세액공제 대상에 포함하는 내용이 추가됐다. 또 기업이 대학 등에 반도체 장비 등 자산을 기증할 경우 시가의 10% 상당을 법인세에서 공제하기로 했다. 다만 석·박사급 인력 확보가 중요한 만큼 이를 위한 추가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위 부위원장인 김정호 KAIST 교수는 “시스템반도체 설계 등에 있어 최고 수준의 석·박사 인력을 지속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며 인력 양성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입법 일정은=특위는 법안 통과에 앞서 기획재정부와의 협의를 통해 최종안을 도출할 예정이다. 세수 감소 등을 고려하면 합의 도출까지 적지 않은 난관이 예상된다. 양 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각 부처의 의견을 충분히 들어 법안에 담았다”며 “기재부에서 최종적으로 전체적인 것을 보고 법안 심사를 소위에서 여러 번 진행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예산 집행 등 지속적인 반도체 산업 지원을 위해 특위를 국회 차원의 상설 특위로 확대하고 범부처 컨트롤타워를 설치해야 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야당의 특위 참여를 강조한 양 위원장은 “이제는 예산이다. 어떤 식으로 국가 재원이 쓰이느냐에 대한 논의가 좀 제대로 돼야 할 것 같다”며 “컨트롤타워를 설치해 각 부처가 중첩된 부분을 제거하고 국회는 눈먼 예산을 관리하는 등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급 인력 양성에 대해서 김 부위원장도 “각 부처를 통솔해야 하는 만큼 부총리급 이상의 컨트롤타워를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며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강력한 의지를 갖고 지원 대책을 추진하지 않으면 이번 특위의 성과가 용두사미로 끝날 수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