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당근마켓을 발굴한 카카오벤처스가 ‘우주’에 관심을 갖는 이유[멘토뷰]

장승룡 카카오벤처스 이사 인터뷰

CVC 아닌 독자적으로 투자 판단하는 VC

‘세 가지 분야’가 유망하다고 생각해…

패밀리사와 ‘필요한 미래를 앞당기는 것’이 목표






초기 스타트업의 성장 배경엔 든든한 지원군이 있다. 바로 카카오벤처스다.



국내 초초기 스타트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벤처캐피탈 회사인 카카오벤처스는 1호 패밀리 왓챠를 시작으로 어느덧 10년째 새로운 스타트업을 발굴해 투자하고 있다. 유니콘 기업으로 분류되는 중고거래플랫폼 ‘당근마켓’, 업비트 운영사 ‘두나무’ 등 약 240개의 패밀리사들이 카카오벤처스를 거쳐 성장했다.

카카오벤처스의 전신은 2012년 김범수 카카오 전 의장이 세운 ‘케이큐브벤처스’다. 2015년 3월 카카오 자회사로 편입돼 2018년 ‘카카오벤처스’로 사명을 변경했고, 2018년부터 정신아 대표가 이끌고 있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카카오벤처스가 카카오 그룹의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탈(CVC)이라고 말하지만, 이는 오해다. 장승룡 카카오벤처스 이사는 “카카오 공동체에 속해있지만 카카오 그룹의 CVC라기보다는 독자적으로 투자 판단을 하는 재무적 투자자(FI)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며 “카카오 그룹과의 시너지를 고려해서 투자하기보단 기업 자체를 보고 투자를 결정한다”고 말했다.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이유, “현재는 성장이 귀한 시대”


카카오벤처스는 왜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걸까. 장 이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성장이 귀한 시대’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인프라가 전무하던 과거엔 도로망과 통신망을 구축하고 자동차와 스마트폰을 파는 등 인프라를 깔며 국가와 산업이 비약적인 성장을 이뤘다. 그러나 인프라가 형성된 이후엔 성장 속도가 더뎌진다. 도로망을 더 이상 구축할 필요도 없고, 한 사람이 열 대의 스마트폰을 구매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장 이사는 “성장은 새로운 것에서 시작되는데, 그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조직이 스타트업”이라고 설명했다.

혁신의 진입장벽이 지속해서 낮아지는 것도 이유다. 장 이사는 “조선업과 통신업은 막대한 자본금이 필요해 일부 대기업들 위주로 성장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며 “넷플릭스 창업 이야기가 낮아진 혁신의 허들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덧붙였다. 초창기 넷플릭스는 온라인으로 DVD를 대여해주는 웹사이트였다. 당시만 하더라도 현재와 달리 웹사이트 만들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실력 있는 엔지니어 만이 웹사이트를 만들고 유지·보수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사이트 이용자가 급증하면서 서버가 트래픽을 감당하지 못해 데이터센터에 문제가 생긴 것. 결국 전체 서비스가 다운되고 3일 동안 DVD 배송이 중단됐다. 당시에는 웹사이트를 관리할 때 컴퓨터 여러 대를 따로 사용해야 했다. 결국 직원이 주변 컴퓨터 매장으로 뛰어가서 서버 컴퓨터를 사 오며 문제는 해결되는 듯했지만 웹사이트는 계속 다운됐다. 넷플릭스가 클라우드로 이전하게 된 배경이다. 장 이사는 “넷플릭스의 사례처럼 요즘은 ‘웹빌더’를 통해 클릭 몇 번이면 누구나 웹사이트를 만들 수 있고 서버는 AWS를 이용해서 트래픽에 비례한 비용만 지불하면 된다”며 “스타트업이 창업 후 유니콘으로 성장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출처=넷플릭스 공식 홈페이지출처=넷플릭스 공식 홈페이지


카카오벤처스가 꾸준히 유니콘 기업을 발굴할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사람들은 흔히 ‘아이디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장 이사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아이디어는 우리 같은 비전문가가 파악하기 어렵다”며 “아이디어의 우수성, 우월성, 성공 가능성을 고려하기보다 변하지 않는 가치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가치는 바로 ‘팀’과 ‘시장’이다.

장 이사가 언급한 대표적인 사례는 OTT 통합검색 및 콘텐츠 추천 플랫폼 ‘키노라이츠’다. 그는 “무엇보다 팀이 너무 좋았다”며 “키노라이츠 대표가 콘텐츠의 마니아였고 콘텐츠 소비자들의 니즈를 굉장히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파악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시장 측면에서는 “키노라이츠 설립 당시가 넷플릭스가 본격적으로 한국에 진출해 활동하던 시기였다”면서 “OTT 산업이 발전하면서 콘텐츠 전역에 걸친 밸류체인이 많은 혁신을 이루고 있었다. 모든 콘텐츠의 소비 여정을 OTT가 장악하게 됐는데, 콘텐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콘텐츠 소비자 입장에서 소비 여정의 가장 앞단을 장악하는 메타 서비스들이 분명히 수요가 있으리라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키노라이츠에 투자하는 여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초기 투자는 기업의 태동기다. 미래가 희미하기 때문에 내부에서 의견충돌이 발생한다. 키노라이츠 역시 투자를 반대 의견이 우세했지만 장 이사는 ‘슈퍼패스’ 카드를 꺼냈다. 모두가 반대해도 투자할 수 있는 카카오벤처스만의 특별한 제도다. 장 이사는 이를 활용해 반대를 무릅쓰고 키노라이츠에 투자했다. 그는 “지금까지 기대 이상으로 회사가 잘 성장해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눈독 들이는 산업… ‘디지털 헬스케어’, ‘가상세계’, ‘우주’



카카오벤처스 내에는 세 명의 파트너가 있다. 각 파트너는 하나의 영역을 맡아 투자를 주도한다. 정신아 대표는 IT서비스를, 김기준 부사장은 선행 기술(AI·로보틱스·로켓·반도체·자율주행 등을 기반으로 한 최첨단 하드웨어, 소프트웨어를 포괄한 딥테크 분야)을, 김치원 상무는 디지털 헬스케어 영역을 담당한다. 세 영역을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는 ‘소프트웨어를 통한 혁신을 이루고 있는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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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정신아 대표, 김기준 부사장, 김치원 상무. 사진 제공=카카오벤처스왼쪽부터 정신아 대표, 김기준 부사장, 김치원 상무. 사진 제공=카카오벤처스


실제로 카카오벤처스는 최근 디지털 헬스케어 영역에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의사 출신 심사역인 김치원 파트너와 정주연 심사역 채용을 시작으로 임상 시험 프로세스를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한 ‘제이앤피메디(JNPMEDI)’, 응급실에서 의료인을 지원하는 인공지능 솔루션을 개발 기업 ‘알피(ARPI)’, 하이퍼로컬 원격진료 및 약 배송 서비스를 실시하는 ‘메디르(MEDIR)’ 등에 투자했다. 장 이사는 “고령화 시대로 접어들며 헬스케어 시장이 구조적인 성장을 이루고 있어 소프트웨어를 기반한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이 구체적인 가치를 만들면서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은 해를 거듭하며 성장 중이다. GIA(Global Industry Analysts)에 따르면 글로벌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은 2020년 1520억 달러로 세계 반도체 시장 규모인 4330억 달러의 35%에 해당하는 규모를 기록했다. 이후 연평균 성장률 18.8%로 성장하며 2027년 5090억 달러 규모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덧붙여 장 이사는 ‘가상세계’와 ‘우주 산업’을 현세대의 신대륙으로 언급했다. 그가 말한 ‘가상세계’는 단순한 VR을 의미하지 않는다. 현실의 아이덴티티와 다른 아이덴티티를 갖고 활동하는 세계로, 메타버스·게임·SNS 활동을 모두 일컫는다. 장 이사는 “가상세계에 맞는 기술들, 가상세계에 적합한 서비스들이 굉장히 많은 각광을 받을 거라고 생각한다”며 “가상세계에서 필요한 자산들이 늘어날 거라 생각하고 그 자산을 안전하게 담을 만한 블록체인과 같은 기술을 유의 깊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우주 산업의 유망성은 미국의 일론 머스크가 창업한 스페이스X를 보고 떠올렸다. 그는 “로켓을 재사용하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성공시킴에 따라서 우주 산업의 판도가 완전히 바뀌고 있다고 느꼈다”며 “천문학적인 우주여행 비용이 획기적으로 줄어듦에 따라서 우주 산업이 비약적으로 성장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우주 산업의 성장은 단순히 인류가 달나라 여행을 떠나는 문제가 아니다. 로켓을 굉장히 저렴한 가격에 운영할 수 있다는 장점을 이용해서 스페이스X의 ‘스타링크(Starlink)’처럼 통신 환경을 혁신하거나 항공 운송보다 더 빠른 초고속 운송을 할 수 있는 관점에서 우주 산업을 바라본 것이다. 장 이사는 우주 산업이 발전하면 현실의 다양한 영역들을 혁신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글로벌 경기 침체는 오히려 ‘기회’다


글로벌 시장이 경기 침체 국면에 들어서면서 벤처 투자가 축소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이에 장 이사 역시 “지난 10년 간 증가한 유동성이 피크아웃 하고 회수되는 국면에서 벤처 투자자 역시 영향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장 이사는 “상장 기업의 밸류에이션, 특히 스타트업이 속하게 되는 성장주의 밸류에이션이 재조정되면서 상장을 목전에 둔 스타트업의 밸류에이션 역시 조정된다”며 “그러다 보니 상장 시장, 프리IPO 시장, 시리즈C, B, A로 넘어오면서 책임을 전가 받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장 이사는 “우리가 운용하는 벤처 펀드가 독특하다”며 “초기로 가면서 글로벌 경제 상황에 따른 영향 역시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벤처 펀드는 기본 8~10년이라는 긴 호흡을 가진다. 이중 절반인 4~5년이 투자 기간인데, 레이 달리오가 말한 단기 부채 사이클이 5년 정도라는 걸 감안해보면 벤처 펀드는 경기의 업사이클뿐만 아니라 다운사이클을 모두 겪으면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리스크가 헤징되는 상품이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실제로 미국 VC 블라인드 펀드 수익률 추이를 살펴보면 변동성이 큰 주식시장에 비해 굉장히 안정적인 흐름을 보인다”며 “다운 사이클에서 태어난 펀드의 빈티지가 더 좋은 사례도 많이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바꿔 얘기하자면 밸류에이션이 낮아진 현재 시점이 더욱더 공격적으로 투자하기엔 적기라는 설명이다.

카카오벤처스 패밀리사가 장승룡 이사가 착용한 후드집업 뒷면에 나열돼 있다. 김도연 기자카카오벤처스 패밀리사가 장승룡 이사가 착용한 후드집업 뒷면에 나열돼 있다. 김도연 기자


카카오벤처스는 창업자를 ‘파일럿(조종사)’, 스스로를 ‘코파일럿(부조종사)’이라 칭한다. 필요한 미래를 앞당기는 것이 창업자라 믿고, 이들이 ‘되는 이유’ 한 가지를 찾아서 나머지는 채워주는 든든한 동반자가 되고자 하는 철학에서 비롯됐다. 장 이사는 “패밀리사들과 함께 카카오벤처스 마피아를 만들어서 사회에 산적한 많은 문제를 풀어나가며 우리에게 필요한 미래를 앞당기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투자를 희망하는 미래의 패밀리사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투자를 검토하다 보면 팀을 늦게 발견해 투자 검토가 어려운 스테이지로 가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카카오벤처스는 기업의 현재 실적, 아이디어의 완결성보다는 ‘이 팀이 어떤 팀인지’, ‘왜 이 사업을 해야 하는지’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카카오벤처스를 만나고 싶다면 바로 지금 만나는 게 적절한 타이밍이다.”

김도연 기자·정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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